[사설]광복 후 ‘좋은 점령군’이라던 소련 군대의 만행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3월 11일 03시 00분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북한에 진주한 소련군은 북한 주민에게 무도한 패악을 부렸다. 소련군은 1945년 8월부터 3년 동안 주둔하면서 해방군을 자처했지만 때로는 일본군보다 더 악독한 짓을 했다. 소련군은 총을 들이대고 재산을 약탈하거나 강간 같은 범죄를 저질렀다. 항의하는 여성의 남편과 가족을 살해한 일도 있었다. 북한 주민은 자경단을 조직해 필사적으로 재산과 가족을 지켜야 했다.

미국 우드로윌슨센터가 옛 소련 국립문서보관소에서 찾아낸 소련군 보고서는 우리가 60여 년 동안 피해자의 증언을 통해 알게 된 스탈린 군대의 만행을 확인해준 자체 기록이라는 점에서 가치가 크다. 소련군의 패악이 얼마나 심했으면 군 내부에서 ‘일벌백계로 기강을 잡아야 한다’는 보고서까지 만들었겠는가.

소련군 중좌 페드로프는 황해도와 평안남북도를 돌아보고 1945년 8월 이후 5개월간 소련군의 악행을 기록한 문건을 만들었다. 보고서에는 소련군들의 약탈과 폭력, 부녀자 겁탈사례가 상세히 기록돼 있다. 소련군은 페드로프의 처벌 건의를 묵살해 결과적으로 약탈과 강간을 조장했다. 소련 사령관 치스차코프는 이러한 군기문란을 단속하기는커녕 소련군의 약탈에 항의하는 봉기가 일어난다면 “조선 사람 절반을 교수형에 처하겠다”는 폭언을 했다.

우리를 더 화나게 하는 것은 소련군의 행패를 보고도 침묵한 김일성 일파의 처신이다. 김일성은 33세의 소련군 대위 출신인 자신을 최고 권력자로 만들어준 소련에 보답하느라 이러한 만행을 못 본 체했다. 김일성은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소련 점령군의 조종을 받는 꼭두각시 노릇을 하기에 바빴다. 북한의 6·25 남침도 스탈린과 소련군의 지원을 받아 이뤄졌다. 소련의 북한 점령은 우리 민족에 닥친 비극의 씨앗이었다.

남한의 외눈박이 친북좌파들도 각성할 때가 됐다. 친북좌파들은 공산당 특유의 미사여구를 동원한 소련군의 포고문에 속아 소련군을 ‘좋은 점령군’이라고 미화하면서 미군의 남한 점령을 비판했다. 한때 고교 역사교과서에 미군은 나쁜 점령군, 소련군은 좋은 점령군이라고 왜곡하는 내용이 들어간 것도 이러한 내부문서를 보지 못하고 소련군의 대외 공식발표를 그대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뒤늦게 공개된 ‘소련군의 만행 보고서’는 광복 전후의 사회상과 미소 점령군에 대한 바른 이해를 돕는 문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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