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하태원]‘이웃집 테러리스트’에 떠는 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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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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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남부 앨라배마 주의 시골 마을인 대프니 시에 사는 샤픽과 데브라 하마미 부부는 무료 동영상 공유사이트인 유튜브를 검색하다가 심장이 멎을 뻔했다. 2002년 대학을 중퇴한 뒤 캐나다와 이집트에 일자리를 얻으러 간 이후 2007년 말에 연락이 끊긴 아들 오마르 하마미(26)가 화면에 등장했기 때문. 5년 만에 만난 아들은 군복 차림에 머리에는 터번을 둘러썼고 턱에는 수염이 덥수룩하게 자라 있었다. 아들 뒤에는 그의 부하들로 보이는 군인 30여 명이 무술훈련을 하고 있었다. 잠시 후 아들의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그는 “미국에 사는 무슬림들이여. 소말리아의 상황을 생각해 보라. 미국이 지원하는 군벌(軍閥)세력의 압제와 혼란이 있은 뒤 당신의 형제들이 이 땅에서 떨쳐 일어나 평화와 정의를 구현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리아 이민자인 샤픽 하마미와 대프니 시에서 나고 자란 백인 여성인 데브라 해들리 사이에서 난 ‘미국인’ 오마르 하마미의 이야기다. 이슬람교를 믿는 아버지와 독실한 기독교도인 어머니에게서 자란 하마미는 촉망받는 젊은이였다. 고등학교 2학년 시절에는 학생회장에 선출됐고 탁월한 카리스마와 훌륭한 말솜씨로 동료 여학생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던 그는 2001년 9·11테러를 기점으로 심각한 정체성의 혼란을 느낀다. 어제까지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이 무슬림식 예법을 따르는 시리아계 이민자의 아들인 하마미를 냉혹하게 배척하기 시작했기 때문. 결국 그는 고향을 버리고 캐나다 토론토에 갔고 그곳에서 이슬람 성직자와 교분을 나누며 미국에 대한 반감을 키워간다. 이후 그는 이집트를 거쳐 소말리아의 무장투쟁 조직에서 승승장구해 이제는 미국을 겨누는 테러조직의 중간간부로 자라났다. 미국에서 나고 자란 자생적 테러리스트가 탄생한 것이다. 테러와의 전쟁이 10년 가까이 진행되면서 미국은 점점 늘어나는 ‘이웃 속의’ 테러리스트 때문에 큰 고민에 빠졌다.

실제로 지난해 9월에는 보스턴에서 약대를 졸업하고 약사로 근무해 온 중산층 젊은이가 이슬람 지하드에 심취해 미국 내 쇼핑몰 테러와 정치인 암살을 계획한 혐의로 기소된 적이 있고, 같은 해 11월 텍사스 주 포트후드에서는 아랍계 미군 군의관인 니말 말리크 하산 소령이 동료들에게 무차별 총기를 난사했다.

자생적 테러리스트들은 끝 모르고 진행되어 가고 있는 테러와의 전쟁에서 생겨나는 미국에 대한 증오를 먹고 자란다. 9·11테러 이후 미국 내에서 무슬림계 미국인들은 잠재적인 테러리스트라는 눈총을 받아 왔고 사실상 2등 시민으로 대우받는 상황이 지속되면서 많은 불만을 표출해 왔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유일 초강대국의 지위를 유지해 온 미국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인종의 용광로라는 표현처럼 다양한 문화에 대한 포용이었다. 누구에게나 기회가 부여되고 소수계 출신이라도 정당한 게임의 법칙에 따라 승자가 됐을 경우 박수를 받을 수 있다는 기대 역시 미국사회를 풍부하게 한 원동력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흔들리는 제국 미국에서는 분노와 초조함이 자주 묻어나는 느낌이다.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승리를 원하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최근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미군 병력 3만 명 증파를 결정했고 알카에다의 거점 소탕작전도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테러와의 전쟁의 진정한 마침표는 미국 사회의 무슬림들이 주위의 시선을 걱정하지 않고 거리를 자유롭게 걸어 다닐 수 있는 날 비로소 찍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태원 워싱턴 특파원 triplet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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