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조선업체인 현대중공업이 노사합의로 근로자 전환배치를 한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최근 “회사와 긴밀한 협력 속에 일감이 부족한 조선부문 인력을 5개 사업부에 배치하기로 결정했다”면서 “일자리 나누기로 위기를 극복하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불황기에는 기업들이 살아남기 위한 구조조정에 나서면서 노사 갈등을 빚기 쉽다. 하지만 현대중공업에서는 회사 측이 경영여건을 설명하고 전환배치를 제안하자 노조가 이를 수용했다.
노사상생을 외치는 오종쇄 노조위원장은 1990년 감옥에서 노조의 골리앗 크레인 농성을 지휘한 인물로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복직 불가 3인’으로 꼽을 정도였다. 지금의 오 위원장은 “21세기 노동자의 화두는 고용안정”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그는 작년 경기침체로 회사가 어려워지자 임금인상안을 경영진에 위임했고 그 대신 고용보장 약속을 끌어냈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무역 물동량이 급감하면서 조선업에 한파가 몰아쳤다. 국내 조선업계의 수주잔량은 2008년의 77% 수준이다. 2년간 신규수주는 거의 없고 계약 취소는 늘어났다. 선박 가격이 하락해 업체들은 수주를 포기하거나 운영자금 확보를 위해 최소한의 수주만 하는 곳도 있다. 중소업체는 물론이고 대형업체도 인력 재배치나 감원을 포함한 구조조정에 나서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다.
불황기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기업의 생사가 갈린다. 일본 도요타자동차 노조는 작년에 기본급을 동결했고 히타치 도시바 노조도 정기승급을 보류해 고용조정을 피했다. 독일 지멘스는 2004년 노조가 실질적인 임금 삭감을 약속하자 공장 이전 계획을 철회하고 일자리를 유지했다. 반면 미국 팬암항공사 노조는 1991년 경영위기 속에서도 고용 안정과 근로조건 개선만을 주장하다 결국 회사가 파산했다. 미국의 ‘빅3’ 자동차업체들이 작년 파산위기에 빠졌던 것은 강성 노조가 구조조정 기회를 그냥 흘려보낸 탓이 크다.
한진중공업 노조는 회사 측의 대규모 정리해고 계획에 대해 고통분담 방안을 제시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26일 총파업을 계획하고 있다. 워크아웃을 추진 중인 금호타이어 사측은 정리해고 또는 급여 삭감을, 노조는 고용안정을 요구하며 맞서고 있다. 기업이 어려울수록 고용안정을 위해 현대중공업 모델처럼 고통을 분담하는 자세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