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권순택]새만금은 왜 原案고집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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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9일 20시 57분


김문수 경기지사는 1970, 80년대에 자신이 “좌파 이념의 노예였다”고 한 적이 있다. 그는 “(1970년대 초반) 대학생 시절 박정희 대통령의 자동차와 중공업 정책,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모두 반대했다”며 “하지만 그걸 만들지 않았다면 우린 지금 뭘 먹고 살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든다”고 자주 말한다. 그는 “대학 다닐 때 서울대 교수들이 모두 반대했고 그래서 나도 반대했지만 모두 틀렸다”는 반성을 주저하지 않는다. 이들의 반대에는 ‘잘못된 미래 예측’도 한몫했다.

김 지사와 서울대 교수들이 반대한 한국의 자동차 산업은 불과 10여 년 뒤인 1986년 자동차의 본고장 미국에 현대자동차 1000대를 처음 수출했다. 그때 씨를 뿌리지 않았다면 지금 세계 5대 자동차 강국이 될 수가 없다.

한국의 산업화는 정부가 야당과 여론의 반대를 돌파하지 못했다면 불가능했다. 국익보다 정치적 이념적 동기에 따른 공약과 정책, 미래 예측 실패가 낳는 결과는 비행기가 뜨지 않는 지방 공항이나 지방 신도시가 되고 있는 경제자유구역만으로도 충분하다.

정치인의 공약이나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주장은 그럴듯하지만 비현실적이다. 역대 대통령이 모두 약속을 지켰다면 역사가 어떻게 바뀌었을지 상상만으로도 흥미롭다. 5·16 거사를 한 박정희 장군의 민정(民政) 불참 선언과 재출마 포기 선언, 노태우 대통령 후보의 중간평가 공약, 대선에 연달아 실패한 김대중 후보의 정계은퇴 선언 등은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이 된 대표적 사례다. 정치인의 약속을 ‘밤에 썼다가 아침에 찢어버리는 연애편지’라고 말한 정치인도 있다.

공약은 무조건 지켜야 한다는 사람은 새만금 사업도 상기할 필요가 있다. 20년 전 기본계획이 수립된 새만금 사업은 노무현 정부 때인 2007년 4월 농지 비율을 72%로 하는 기본구상이 수립됐고 특별법까지 만들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지난해 10월 농지 비율은 30%로 줄이고 산업 관광 등 비농지를 70%로 늘려 기본구상을 환골탈태시켰다. 김완주 전북지사는 7월 이 대통령에게 “대통령님! 오늘 저와 전북도민들은 대통령님께 큰절 올립니다”라는 감사와 찬사의 편지까지 보냈다. 세종시 원안 고수론자들은 왜 새만금 사업은 원안대로 하라고 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지난 정부 때 만든 세종시 계획은 2030년까지 50만 명이 살게 한다는 것이 목표다. 수도권 인구는 170만 명이 줄고 충청권 영남권 호남권은 그만큼 늘어난다고도 했다. 하지만 많은 전문가는 세종시가 원안대로 건설되면 수도권 인구 분산 효과는 없고 세종시는 밤이면 유령도시가 될 것이라고 걱정한다. 전망이 빗나가도 책임은 정부가 지면 졌지 ‘원안을 고수하라’고 목청을 높인 정치인들은 책임지지 않을 것이다. ‘원안 세종시’와 ‘수정안 세종시’를 각각 만들어 누가 맞는지 검증할 수도 없으니 딱한 일이다.

책임 있는 정치인이라면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을 보고 논쟁을 벌여도 늦지 않다. 아파트를 청약할 때는 모델하우스라도 꼼꼼히 살펴보고 결정하는 게 정상이다. 인터넷 쇼핑으로 몇만 원짜리 물건을 사려면 사용 후기까지 읽고 결정한다. 혁신도시 5, 6개는 더 만들 수 있는 막대한 사업비가 들어가고 국가 경쟁력과 미래가 걸린 사업을 새 계획이 나오기도 전에 극한 대결로 몰아가는 것은 무책임 정치의 극치다.

권순택 논설위원 maypo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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