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진구]국제행사조차 취소한 국책 노동硏의 파업

  • 동아닷컴
  • 입력 2009년 11월 6일 03시 00분


단체협상 개선문제로 노사 갈등을 겪고 있는 국무총리실 산하 한국노동연구원 노동조합이 5일로 46일째 전면파업을 벌이고 있다. 노동연구원은 지난해 8월 현 박기성 원장 취임 후 연구원 운영을 놓고 노사가 갈등을 빚어왔다. 올 2월 사측이 “인사·경영권 침해가 명백한 기존 단협을 수용할 수 없다”며 단협을 해지하면서 노사 갈등이 본격화됐다. 이에 노조는 9월 21일 전면파업을 선언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파업은 법으로 보장된 노조의 기본권이다. 불법이 아닌 한 그 권리는 마땅히 보장받아야 한다. 하지만 권리는 보장하되 그 권리의 행사가 매우 신중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것도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 중 하나다. ‘우리들의 정당한 권리 행사’로 다른 사람들이나 사회가 더 큰 피해를 보면 안 되기 때문이다.

노동연구원은 이달 개최 예정이던 한중일 동북아 3국 포럼을 장기 파업 때문에 취소했다. 이 포럼은 3개국 노동전문가들이 매년 한 차례씩 모여 각국 노동정책과 노사문화 등을 논의하는 국제행사. 지난해 11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포럼에는 중국 노동보장과학연구원과 일본 노동정책연구·연수기구 등 권위 있는 기관들이 참여했다. 더욱이 올해는 한국이 주관국. 한국의 대표적인 노사문제 연구기관으로 공공기관인 노동연구원이 아이러니하게도 내부 파업으로 국제행사를 취소했다는 사실을 중국과 일본 노동전문가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노동연구원이 내년에 열릴 같은 포럼에서 ‘노사 상생’이니, ‘일류 국가 건설을 위한 노사의 역할’ 같은 주제발표를 한다면 청중이 과연 동의할지 의문이다.

연구원 주최로 지난달 13일 열린 ‘인적자본과 경제성장’이란 주제의 국제세미나는 당초 300여 명의 국내외 전문가가 참여하는 대규모 행사로 기획됐다. 하지만 이 행사도 파업으로 오찬을 겸한 비공개 회의로 진행됐다. 이 자리에는 미국 클렘슨대 로버트 다무라 교수 등 세계 유수 석학과 미국 리치먼드, 필라델피아 연방준비은행 고위 관계자들이 발표자로 참석했다.

연구원은 지난달 말까지 작성해야 하는 내년도 사업계획서도 전혀 준비하지 못하고 있다. 진행 중인 각종 연구사업들도 차질을 빚고 있지만 파업으로 실태 파악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구원 단협에 대해서는 노사 모두 할 말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공공기관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원장이든, 노조든 옳고 그름을 떠나 ‘우리들의 행위’로 실추되는 ‘국가이미지’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일이 아닌가 싶다.

이진구 사회부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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