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윤평중]MB 중도실용론은 허구인가

  • 입력 2009년 9월 9일 20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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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이명박 대통령의 행보가 눈에 띄게 의욕적이다. 중도실용주의를 ‘정부의 근간’으로 삼겠다고 선언하고 친서민정책을 표방하면서 국정지지율도 높아졌다. 이명박 정부에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던 개혁적 지식인인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을 국무총리에 내정한 것도 자신감의 반영일 것이다.

그러나 중도실용론에 대해 좌우 양쪽에서 비난의 십자포화가 쏟아지고 있다. 중도실용노선이 보수적 가치를 가벼이 다루고 있다는 보수논객의 지적은 점잖은 편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변절했다’는 우익진영의 비판에 더해 어떤 보수인사는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을 허용한 이 대통령에게 ‘대한민국 노선을 버린 국가배신자’라는 극언을 마다하지 않는다. 진보진영의 반응도 사뭇 비판적이다. 중도실용주의가 ‘근원적 대안이기는커녕 일회성의 서민 마케팅’에 불과하며 ‘천하가 다 아는 강부자·고소영 정권이 정권위기 탈출용’으로 ‘위선을 떨고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쇼하고 있네’라는 비아냥거림이다. 진보인사들은 정운찬 총리 기용도 그런 관점에서 해석한다.

선명한 걸 좋아하는 데다 진영사고가 팽배한 우리 정치지형에서 중도론자는 기회주의자로 여겨지기 일쑤다. 흑백논리적 원리주의가 판치는 곳에서 실용주의는 천박한 현실추수주의로 간주되기 쉽다. 한국정치사에서 중도실용노선이 드문 이유다. 좌우로부터의 냉소는 극단을 경계하는 중도실용주의가 필연적으로 직면해야 하는 반응인 것이다.

보수는 “변절”, 진보는 “쇼”라 협공

지난 1년 반 동안의 시행착오를 감안하면 이명박 정부의 변화는 사실 만시지탄의 감이 있다. 지난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이 참여정부의 실정에 대한 응징투표에 더해 당시 이명박 후보가 내세운 중도실용노선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념에서 실용으로’의 구호도 상당한 호소력을 가졌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왜 지금까지의 이명박 정부의 행로가 진정한 중도도 아니고 실용도 못 되었던가? 그 단적인 증거는 정부 출범 시 ‘국정철학’으로 내건 ‘창조적 실용주의’에서 발견된다.

창조적 실용주의는 분배와 통합 대신 성장과 발전을 지향하고 ‘신발전체제 구축의 국정목표’에 전념했다는 점에서 전혀 창조적이지 않았고 실용정신과도 거리가 멀었다. 실용주의의 이념화라는 자기배반적 상황이 그 산물이었다. 나는 지난 1년 반 동안 이명박 정부 실정의 근본원인이 여기에 있다고 본다. 이념을 거부해야 할 실용이 오히려 신자유주의적 경제성장 만능주의라는 독단적 이념으로 변형되고 만 것이다. 여기에 대통령의 일방통행식 독주와 강부자·고소영식 인사정책이 더해질 때 ‘날개 없는 추락’이 불가피했다. ‘2008년 촛불’은 그걸 극적인 방식으로 상징한다.

이명박 정부가 국정철학을 창조적 실용주의에서 소통과 통합을 중시하는 ‘통합형 자유주의’로 바꾸고, ‘중산층을 두텁게, 서민층을 따뜻하게’를 앞세우는 건 이런 상황에 대한 자체 반성의 결과일 터이다. 이런 변화가 변절일 수도 있고 쇼일지도 모르지만, 실패한 노선에서의 탈출을 시도하는 노력 자체를 폄하할 필요는 없다. 한 정권의 시행착오가 특정 정치세력의 퇴조로만 귀결된다면 대다수 시민에게는 별 상관이 없는 일이다. 그러나 정부의 실패는 국가의 불행과 국민 전체의 고통을 가져오기 마련이다. 민주적으로 선출된 모든 정부가 성공해야만 하는 정치적 책임윤리를 갖는 근원적 이유도 여기에 있다.

중도실용론에 대해 야권이 격렬하게 반발하는 것 자체가 중도실용주의의 힘을 보여준다. 이명박 정부를 ‘독재정권이자 연성(軟性) 파시즘’이라고 매도하는 이들이 현 정부의 친서민 레토릭에 대해서 가혹한 평가를 내리는 것도 마찬가지다. 중도실용주의가 수사(修辭)에 머무르지 않고 정책으로 현실화될 때의 정치적 위력을 미리 보여주는 것이다. 따라서 중도실용노선을 둘러싼 논란의 핵심은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정부정책의 구체화 여부로 압축된다.

서민·중산층 위한 정책 현실

중도실용주의 자체는 시의적절한 담론이다. 문제는 이 담론을 어떻게 현실로 담아낼 것이냐 하는 점이다. 화려한 말과 실제행동이 다르다면 중도실용론은 허구로 전락한다. 그 결과 이명박 정부의 치세도 또 하나의 ‘잃어버린 5년’으로 기록될 것이다. 반면에 민심에 귀 기울이는 정부가 특정 계층만이 아니라 시민 모두를 위한 국정을 펼 때 나라의 앞날에는 희망이 있을 것이다. 국무총리에게 독자적으로 운신할 공간을 주는 대통령의 유연함과 대통령에게 직언하는 총리의 강직함이 어우러지는 게 그 작은 징표일 터이다.

윤평중 객원논설위원·한신대 교수·사회철학pjyoon56@korne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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