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2009년 8월 10일 02시 59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적정한 양형 판단을 위해 조사관을 두는 ‘양형조사관제’는 2004년 사법제도개혁위원회에서 처음 제시됐다. 그러나 조사 주체와 방법 등을 둘러싼 법원과 검찰의 이견으로 합의를 이뤄내지 못하다 지난해 대법원이 양형기준제 시행에 맞춰 ‘법원 조사관’을 통해 양형조사에 나서기로 했다. 법원 조사관은 법원조직법에 규정돼 있어 따로 입법이 필요 없다는 것. 그러나 검찰은 양형조사는 피고인의 권리·의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항이므로 법률로 규정해야 한다고 반대했다. 현재는 판사 출신인 한나라당 이주영 의원 등이 양형조사관제가 포함된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제출한 상태다.
최근 법원이 양형조사관제를 본격 시행하면서 법원과 검찰 간에 또다시 기(氣)싸움 양상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달 초 법원 조사관들이 서울구치소에 수감된 피고인들을 접견해 앞으로 있을 양형조사를 준비하려 했으나, 법무부 교정본부가 이를 허용하지 않아 계획이 무산됐기 때문이다. 대검찰청은 양형조사를 위해 법원 조사관이 재판 이전에 수사 서류를 보여줄 것을 요구하면 응하지 말 것을 일선 검찰청에 지시하기도 했다. 검찰은 또 양형조사 보고서가 재판부에 제출되더라도 이를 인정할 수 없고 조사 내용을 감안한 판결 선고가 나오면 즉시 항소할 방침이다. 법원이 주도하려는 양형조사관제를 인정할 수 없고, 검찰이 취할 수 있는 조치는 모두 동원하겠다는 태세다. 올 4월 대한변호사협회도 “기소 이후 또다시 법원 소속 직원에게 조사를 받게 하는 것은 피고인에게 육체적, 심리적 부담을 준다”는 내용의 의견서를 국회에 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달 20일 대법원은 형사재판에서 양형조사 업무를 맡는 법원 조사관 21명을 서울중앙지법과 인천·수원·대전·부산·광주·대구지법 등 7개 주요 법원에 배치하고, 형사소송법이 개정돼 제도화되면 이들을 양형조사관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법원은 양형이 판사의 몫이라는 점에서 법원 조사관이 양형조사를 하는 것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견해다.
그러나 검찰과 변호사단체는 이를 법원의 영향력 확대로 보고 있다. 이렇게 미합의된 형사사법제도로 인한 피해자는 결국 재판을 앞두고 있는 피고인일 수밖에 없다. 최근 몇 년 동안 구속영장 기각 등을 놓고 법원과 검찰이 툭하면 싸워온 결과는 ‘사법 불신’뿐이었다. 제발 이번에는 ‘밥그릇 다툼’ 대신 현명한 합의를 이끌어내는 모습을 기대한다.
최우열 사회부 dnsp@donga.com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