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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년 3월 14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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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도 기계 문명의 발달로 정보의 홍수 속에 사는 그들이 인문학적인 지식 없이 상업주의와 인터넷이 결탁해서 쏟아내는 정보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많은 독자는 책을 보지 않고 인터넷에만 매달리는데 기호학자 움베르토 에코가 “인터넷에는 내가 필요한 정보가 없다”고 말했듯이 거기에는 단편적인 지식과 기계적인 정보밖에 없다. 그들은 전문적인 분석과 평가가 담긴 독서 지침 없이 영상 매체와 인터넷에서 얻는 광고 성격이 짙은 일방적인 짧은 지식과 정보에 압도되어 추종 구매로 흥미 위주의 책을 선택해서 읽는다.
물론 판타지 소설은 이념적인 전쟁에 지친 젊은이에게 피난처를 제공하며 새로운 상상력을 자극한다는 의미에서 필요한 부분이 없지 않다. 그러나 현실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환상적인 경험을 주로 제공하므로 현실 세계에서 해야 할 인간적인 의무에서 벗어나려는 도피적인 인간으로 만들 위험성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한다. 젊은이가 환상 세계에만 몰입하면 다른 인문학 서적은 물론 현실 세계를 다룬 고전적인 문학 작품에 나오는 살아있는 치열한 경험을 통한 깨달음의 지혜를 얻을 수 없다.
대학생들 흥미 위주 ‘독서편식’
판타지와 현실, 이 두 개의 상반된 패러다임을 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의 문학 세계를 비교하는 틀 속에 넣고 다시 생각하면 분명해진다. 조지 스타이너가 지적했듯이 도스토옙스키는 판타지 세계와 무관하지 않은 신비의 세계에 접근했다. 그는 이성주의를 경멸하고 패러독스를 좋아했으며 악령의 침입에 취약한 신비적인 것을 수용하며 탐색했다. 그는 결국 단순히 ‘꿈으로 짜인 직물’로 끝나는 환각적이고 유령적인 것에 항상 신경을 쓰는 모습을 보였다. 도스토옙스키는 인간에 대한 풍부한 진실을 말했다. 그러나 스타이너는 “그것은 인간이 믿고 살아갈 수 없는 진실이다”라고 말했다.
반면 톨스토이는 만져 보고 지각할 수 있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경험의 실체와 건강하고 올림피아적인 생명력의 구체화에 작가적인 초점을 기울였다. 토머스 하디가 말한 바와 같이 인간이 처한 최악의 상황과 조건을 알아야 그것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인간과 인간 조건에 대한 진실을 이해하기 위해 현실세계는 물론 신비스러운 판타지 세계를 균형 있는 시각으로 동시에 탐색해야 도스토옙스키가 말한 부자연스러운 생의 미로를 빠져나오는 길을 찾을 수 있다.
그래서 정보의 홍수 속에서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현실과 판타지, 두 가지 세계에 대한 균형 있는 시각을 갖고 올바른 독서를 하도록 책에 대한 교육적인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일부 정부기관과 중요 언론기관이 훌륭한 책을 선택해서 소개하는 작업을 한다.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대학의 인문학과, 특히 문학을 가르치고 연구하는 대학의 문학부가 앞장을 서서 좀 더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야 한다. F R 리비스가 지적한 바와 같이 ‘살아 있는 현실’을 담은 문학을 비평적으로 연구하는 대학의 문학부는 선진 문명사회를 이루려는 인간의 창조적인 노력을 결집하는 ‘연락의 중심지’이자 지적인 논의와 창의적인 비판 과정을 수용할 수 있는 언어의 광장임에 틀림없다.
새로운 고전 찾아내 읽게 해야
대학의 문학부는 문학과 문명의 가치 사이에 튼튼한 연결 고리를 맺고 인간의 야만적인 면을 인간화하기 위해 노력한 뚜렷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시대정신에 따라 정전(canon)이 바뀜에도 불구하고 고전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낡은 틀에서 벗어나지 못해 거친 사회를 선진화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되지 못한 경우가 없지 않다. 이 시점에서 대학인이 국민을 선진화하는 데 기여하는 독서 교육을 위해 할 일은 도서관 카탈로그에 적혀 있는 낡은 개념의 고전이 아니라, 카프카가 말한 바와 같이 ‘우리들 내면에 얼어붙은 바다를 깨뜨리는 얼음 도끼’같이 우리를 잠에서 깨우는 새로운 고전을 찾아내어 학생은 물론이고 사회 전체 구성원이 읽도록 하는 것이다.
이태동 서강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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