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신광영]“北 주장에 말문 막혀…” 고개 떨군 유족들

  • 입력 2008년 7월 14일 03시 01분


금강산 관광을 갔다가 싸늘한 시신으로 돌아온 어머니의 영정 앞에서 아들 방재정(23) 씨는 조문객들과 차마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옆집에 살며 고인과 절친했던 이모(57) 씨가 자신의 얼굴을 두 손으로 쓰다듬자 방 씨는 검은 뿔테안경 아래로 방바닥만 내려다봤다. 이 씨는 “아이고, 하지 말라는 일 억지로 할 사람이 아닌데…”라며 방 씨와 손을 맞잡고 눈물을 흘렸다. 고인의 남편 방영민 씨는 손수 받아온 물을 건네며 이 씨의 어깨를 두드렸다.

13일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된 박왕자 씨의 빈소에서 유족들은 망연자실함 속에서도 침착하게 조문객을 맞았다. 그러나 그 차분한 표정 뒤로 유족들은 북한 측의 설명에 대해 강한 의구심을 억누르고 있었다.

검은색 베레모를 눌러쓴 남편 방 씨는 “일행들의 설명과 북한의 주장이 갈수록 달라져 의문만 계속 커지고 있다. 지금으로선 어떻게 알아보거나 확인할 도리가 없어 답답하다”며 한숨을 쉬었다.

아들 재정 씨도 “북한 쪽 주장대로라면 어머니가 30분 만에 5km가량을 걸었다는 건데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며 “북한의 일방적인 주장을 어디까지 믿어야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언니 박모 씨는 “사고 전날 같은 곳에 갔던 동생의 친구가 철조망이나 안내문구가 없었다고 하더라. 고양이도 무서워하는 동생이 산책하려고 펜스를 넘었겠느냐”며 관광객 관리 소홀 문제를 지적하기도 했다.

주말 내내 박 씨의 빈소에는 한승수 국무총리를 비롯해 김하중 통일부 장관, 현정은 현대 회장, 여야 간부 등 정관계 인사들의 조문 행렬이 이어졌다. 이들은 한결같이 철저한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의 의지를 내보였다.

하지만 북한 당국이 우리 측의 현장조사 요구를 거부하고 총격 사건의 책임까지 남측에 떠넘기는 행태를 보여 유족들은 사실상 반신반의하고 있다. 그동안 북한의 억지와 고집 앞에 지난 정부들은 무기력하기만 했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말대로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을 당한 유족들. 내 어머니가, 내 아내가, 내 친동생이 어떻게 숨졌는지 밝혀달라는 주문은 정부에 대한 최소한의 요구다.

남편 방 씨는 “모든 의혹이 풀려서 아내가 편안히 잠들 수 있으면 좋겠는데 과연 잘될 수 있을까요. (진상 규명이) 잘 안 되더라도 어쩌겠어요. 계란으로 바위 치는 격이지”라고 체념한 듯 말했다.

신광영 사회부 neo@donga.com


▲ 영상취재 : 동아일보 사진부 김재명 기자


▲ 영상취재 : 신세기 동아닷컴 기자
▲ 영상취재 : 이진아 동아닷컴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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