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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2월 29일 02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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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만주에서 항일무장투쟁을 벌인 대한민국임시정부 직할 참의부 독립군 223명의 이름 계급 나이가 기록된 명단이 공개됐다는 본보 보도(28일자 A1면)를 보고, 전북 전주시 김성철(61) 씨가 부친의 이름이 있는지 물어 왔다. 기자는 이런 전화를 여러 통 받았다. 이 명단을 찾아낸 장세윤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도 종일 비슷한 전화를 쉴 새 없이 받았다.
민족의 독립을 위해 청춘을 바친 아버지나 할아버지의 의기를 기록으로 확인하고 싶었던 후손들이 가장 낮은 계급인 이등병까지 인적 사항이 밝혀진 명단이 있다는 보도에 실낱같은 희망을 건 것이다.
만주에서 활동한 독립군 중 지휘관과 명망가들을 제외한 사병들은 대부분 이름조차 알려져 있지 않다. 일제와 맞서기 위해 너나 할 것 없이 목숨을 버렸지만 대부분 무명용사인 셈이다.
장 연구위원은 이에 대해 “일제가 패망한 뒤 만주를 떠나지 못한 독립군 중에서 사상이나 이념 문제로 (중국의 공산당 정부로부터) 박해받을 것을 우려해 관련 문서를 없애는 바람에 자료가 드물다”고 말했다.
중국 당안관(당案館·국가기록보관소)이 확보하고 있는 만주 일대 독립운동사 관련 자료를 한국인 학자에게 공개하지 않는다는 점도 ‘독립군 무명용사의 이름 찾기’를 어렵게 하고 있다. 동북공정에 따라 조선족의 역사를 부각시키지 않으려는 속셈 때문이다.
신주백 국민대 연구교수는 “독립군에 어떤 계층이나 연령의 사람들이 참여해 어떻게 생활했는지에 대한 연구는 자료가 없어 불모지나 다름없다”며 안타까워했다. 당안관에 이 공백을 채워줄 자료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연구자 개인 차원의 접근은 한계에 봉착했다는 것이다.
장 연구위원은 “이제라도 당안관 자료의 공식적인 활용을 보장할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한국 정부의 지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독립과 자존을 위해 몸을 바쳤으나 이름조차 찾지 못한 ‘민족의 혼(魂)’을 달래주는 작업을 연구자 개인에게만 맡길 게 아니라 정부 차원에서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에 공개된 독립군 무명용사들은 80년이 넘어서야 무관심의 그늘을 벗어날 수 있었다. 89돌 3·1절을 하루 앞두고 후손의 책임을 다하지 못한 세월이 무겁게 다가온다.
윤완준 문화부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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