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권효]“돈선거 꿈도 꾸지 마라” 청도 영천의 교훈

  • 입력 2008년 2월 18일 02시 59분


“곪았던 게 터진 겁니다. 상처가 크지만 이번 일로 돈 선거를 뿌리 뽑을 수만 있다면 다행 아니겠습니까.”

경북 청도군 청도읍의 한 이장은 지난해 치른 군수 선거와 관련해 28명이 구속되고 749명이 불구속 입건돼 부끄럽지만 금품 선거 풍토를 바로잡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영천시장 재선거로 구속된 사람은 21명. 청도와 영천에서 조사받은 주민만 1500여 명에 이른다. 두 곳 모두 전임 단체장 2, 3명이 공직선거법이나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중도 하차했던 지역이다. 청도읍 주민은 17일 “이번 돈 선거가 불거지지 않았다면 4월 총선 때도 똑같았을 거다”라며 “어디 가서 청도 사람이라고 입을 열지 못할 정도로 창피하지만 이젠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청도 군민 3만여 명은 21일 정월대보름에 청도천 둔치에서 군민 대화합 행사를 열 예정이다.

인구 10만 명의 영천시는 ‘충절의 고장’으로 불린다. 고려 말 충신인 포은 정몽주, 여말선초에 화약을 만들어 왜구 격퇴에 앞장선 최무선, 임진왜란이 끝난 뒤 전쟁에 지친 병사를 위로하기 위해 ‘태평사’를 지었던 조선 중기의 무신인 노계 박인로가 태어났다.

영천시내 완산시장에서 건어물 가게를 하는 60대 주인은 “모든 후보가 영천을 잘살도록 만들겠다고 했는데 알고 보니 도둑×이었다”며 “하루하루 먹고사는 게 얼마나 힘든데 시의회 의장까지 부정 선거에 앞장서느냐”고 혀를 찼다.

두 지역의 경찰과 선거관리위원회의 ‘뒷북 조사’도 도마에 올랐다. 돈 봉투가 밤낮없이 춤을 췄는데도 손을 놓고 있었다는 따끔한 지적이다. 경찰이나 선관위가 돈 선거 현장을 적발한 게 아니라 낙선 후보의 신고 또는 후보와 선거운동원 간의 갈등이 수사의 실마리가 됐기 때문이다.

청도와 영천의 부정 선거 수사가 어디까지 번질지 아무도 모른다. 양파 껍질이 벗겨지듯 속속 연루자가 확인되고 있다. 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몇몇 주민은 경찰 조사 과정에서 뒤늦게 참회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하지만 새마을운동의 발상지인 청도와 충절의 고장인 영천이 땅에 떨어진 위상과 구겨진 자존심을 되찾을 기회는 남아 있다. 당장 4월 총선 때 후보든 유권자든 ‘돈의 유혹’을 물리치고 전국에서 가장 모범적인 선거를 치르면 된다.―대구에서

이권효 사회부 bor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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