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공무원들이 中心을 잃지 않아야 한다

  • 입력 2007년 6월 21일 23시 17분


청와대는 ‘지금 공무원들이 국회 자료 제출까지 선거관리위원회의 눈치를 봐야 하는 황당한 상황’이라고 개탄하는 글을 홈페이지에 올렸다. 중앙선관위가 노무현 대통령의 선거 중립 의무 위반을 경고하고, 한나라당이 ‘운하(運河) 보고서 변조 의혹’을 제기한 이후 공무원들이 선관위와 정치권의 눈치를 보는 ‘참으로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주장이다.

지금 공무원들은 황당해하고 있음 직하다. 선거 중립과 공명선거 실현의 표상이어야 할 대통령이 스스로 선거법을 짓밟은 것도 모자라 정부 전체를 향해 ‘선관위 눈치’ 보지 말고 대선 후보들의 공약을 검증하라는 투로 지시를 했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은 다른 곳도 아닌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의 명령이니 그렇게 하라”고 외쳤다.

이젠 ‘노 대통령과 헌법 간의 불화(不和)’가 치유 불능 상태에 다다른 듯해 말하기도 지겹지만 언론이 침묵할 수도 없다. 헌법 7조 1항에는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고 명시돼 있다. 공복(公僕)으로서의 소명(召命)을 규정한 것이다. 2항에 ‘공무원의 신분과 정치적 중립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고 굳이 덧붙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런데 공무원의 장(長)인 대통령이 ‘명령’이라며 사실상 일탈(逸脫)을 부추기고 있으니, 정도(正道)를 아는 공무원이라면 황당해하지 않겠는가.

대통령이 말로는 “후보 위에 국민이 있다. 객관적으로 연구하고 조사해 국회가 달라고 하면 모두 제출해 주라”고 했지만, ‘범여권의 대선 승리’를 노골적으로 외치는 대통령의 지시를 ‘객관적’이라고 여길 국민과 공무원이 어디 있겠는가. 공무원들은 이제 국회의원들이 상대 당 대선 후보들의 공약을 검토해 보고하라고 앞 다퉈 요구해도 거부할 수 없게 됐다. 자칫하면 행정부 전체가 당파적 선거운동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우려가 커졌다.

우리 공직사회는 1988년 평화적 정권교체와 함께 직업공무원제를 꾸준히 정착시켜 왔다. 정치적 중립을 근간으로 하는 직업공무원제가 흔들리면 정부는 ‘정권의 시녀’로 전락하고 만다. 본보는 지난날 고비마다 사설을 통해 ‘공무원들의 정치 중립이야말로 직업공무원제의 기초’라고 역설해 왔다.

대통령이 잘못된 길로 몰아가더라도 오로지 국민을 쳐다보며 중심(中心)을 지켜 주기를 대한민국 공무원들에게 요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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