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전쟁하잔 말이냐”로 국민 또 속일 건가

  • 입력 2006년 10월 16일 02시 58분


노무현 정권 사람들은 북한의 핵 보유를 크게 두려워하지 않는 듯하다. 대통령부터 북의 핵실험을 ‘작은 문제’라 했다.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은 유엔의 대북 제재에도 불구하고 남북경협은 계속돼야 한다는 의지(意志)를 입증하려는 듯이 개성공단을 방문하겠다고 한다.

동해상에서 방사능이 탐지되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대북 제재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지만 우리 집권층의 주된 관심은 김정일 정권과의 관계 유지에 쏠려 있다. 이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전쟁은 막아야 하는데, 북을 압박하면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논리를 편다. 북에 대한 단호한 대응을 주문하면 “그럼 전쟁이라도 하자는 말이냐”고 되받는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 8년 반 동안 귀가 아프게 들었던 말이다.

대북 퍼주기의 한계와 문제점을 지적해도, 심지어는 한미공조의 필요성만 강조해도 되돌아오는 답은 ‘전쟁 나면 어쩔 거냐’는 식의 대국민 위협이다. 박관용 전 국회의장은 최근 저서 ‘통일은 산사태처럼 온다’에서 “북의 전쟁준비에 대처하고, 북의 인권상황을 바로잡아주자는 게 어떻게 ‘전쟁하자’는 것이 되느냐”며 전쟁 거론을 “조폭식의 되받아치기 어법”이라고 비판했다.

노 정권 사람들의 이런 수법은 지난 대선 때 자신들은 ‘평화세력’으로, 상대는 ‘전쟁 세력’으로 나누는 선전선동술을 보인 데서부터 여실히 발휘됐다. 이는 오늘날 국제사회의 핵 포기 압력과 제재를 ‘선전포고’라고 주장하는 북한 정권의 논리와 맥이 통한다. 요즘 북한 정권은 세계를 향해 ‘전쟁 불사’를 외치고, 남한 정권은 국민을 향해 ‘전쟁이라도 하자는 말이냐’고 따진다. 대한민국 집권세력이 김정일 정권의 무엇이기에 이렇게 호흡이 잘 맞는지 궁금할 지경이다.

정말로 우리를 전쟁의 위험으로 몰고 가는 쪽은 맹목적인 대북 포용주의자들이다. 감상적 자주(自主)와, 국내정치에서 비주류의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 동원한 ‘정치적 자주’를 앞세워 북을 돕고 지원했지만 돌아온 것은 핵실험이다. 원칙도, 자긍심도, 국익에 대한 전략적 고려도 없이 양보만 거듭한 유화(宥和)정책의 귀결이다. 역사적으로 유화정책은 성공한 예가 없다. 영국 등이 히틀러의 야심도 모르고 양보만 하다가 맞게 된 제2차 세계대전이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포용정책이 북의 핵 보유를 막지 못했는데도 포용정책만 고집하면 다음 단계엔 북핵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다. 북이 핵을 가지지 않았을 때도 전전긍긍했는데 핵을 갖게 된 후에는 얼마나 더하겠는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핵’이란 말만 해도 우리 사회는 마비되고 4800만 국민은 잠을 설칠 것이다. 그때도 “전쟁이라도 하잔 말이냐”는 똑같은 논리로 북을 두둔하고 감쌀 것인가.

임기가 유한한 정권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런 외통수로 몰아넣을 수는 없는 일이다. 인류 보편의 가치이자 우리의 헌법정신인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구현’이 곧 국익이라고 한다면 노 정권은 생각을 바꿔야 한다. 얼치기 친북좌파 이념으로 나라를 통째로 변질시켜 김정일 집단에 바치려는 의도가 없다면 잘못된 포용정책은 재고(再考)해야 마땅하다. 북을 무조건 포용하는 것은 평화의 길이 아니다.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 결의에 적극 협조함으로써 잘못된 햇볕-포용정책의 함정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앞에서는 “안보리 결의를 지지한다”는 외교통상부 성명까지 내고 뒤로는 어떻게든 제재에서 도망갈 궁리만 해서는 북에 핵을 포기시킬 수 없다. 맹목적 포용정책이 아닌, 북의 행태와 체제에까지 변화를 줄 수 있는 상호주의에 입각한 대북정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 안보리 결의 준수와 이를 위한 한미공조 강화가 그 첫걸음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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