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현구]감사원 ‘정치적 중립’ 포기할건가

  • 입력 2006년 2월 9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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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감사원이 사립학교 운영 실태에 대해 대대적인 특별감사에 나섰다. 감사원이 이 시점에서 전(全) 사립학교를 대상으로 업무 전반을 감사하겠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한마디로 감사원의 독립성을 망각한 정치적 ‘기획 감사’로 볼 수밖에 없다.

감사원법은 2조 1항에서 감사원의 지위에 대해 ‘감사원은 대통령에 소속하되 직무에 관하여는 독립의 지위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독립성’이야말로 감사원의 존립 기반이나 다름없다. 감사원에 독립성이 빠진다면 행정부 내의 여타 사정기관이나 감사기관과 크게 다를 게 없기 때문이다.

나라별로 보면 감사원(회계감사원)의 독립성 확보를 위해 아예 입법 사법 행정에서 분리시켜 제4부와 같이 운영하는 독립형(일본 대만 헝가리)과 독립적이면서 준사법적 지위를 갖는 사법부형(프랑스 독일 그리스), 기능적 독립성을 유지하되 의회 소속으로 하는 입법부형(미국 영국 인도) 등이 있다. 대통령제 정부 형태에서 행정부형 감사원을 가진 나라는 필리핀 나이지리아 아르헨티나 등이 있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은 한국뿐이다.

말하자면 우리는 ‘후진국형’ 감사원 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셈이다. 더구나 우리의 감사원은 회계감사뿐만 아니라 직무감찰까지 겸하고 있어 권력자가 ‘도구화의 유혹’에 쉽게 빠져 드는지도 모른다.

감사원의 독립성은 감사의 공정성과 신뢰성을 담보하기 위해 어떤 외부의 압력이나 간섭도 받지 아니하고 독자적인 판단으로 감사 업무를 수행하는 것을 말한다. 현실적으로 그 요체는 ‘정치적 중립성’과 ‘업무상의 자율성’으로 모아진다.

이번 사학 특감은 감사 시기의 선택으로 보아 정치적 의도성이 역연하다. 왜 하필이면 개정 사립학교법 문제로 여야가 정치적 극한 대결로 치닫고 있는 이 민감한 시기에 사학 비리를 발본색원하겠다고 나서는가. 사학에 구조적 비리가 있다면 추후 이른바 ‘시스템 감사’를 하는 것이 정도(正道)일 것이다. 감사원이 정쟁의 도구로 전락했다는 비판에 변명의 여지가 없게 됐다.

감사 내용 면에서도 감사의 ‘내재적 한계’를 벗어남으로써 업무상의 자율성이 무너지고 말았다. 그동안 감사원 스스로 사학의 자율성 보장 차원에서 자제해 왔던 직무감찰권을 전 사학에 무리하게 발동했다. 이는 감사원의 독자적 판단이라고 믿기 어렵게 하는 대목이다.

감사원은 이제 어쩔 수 없이 회계감사와 직무감찰의 양 칼날로 사학의 비리구조를 파헤쳐 사학법 개정의 정당성을 홍보해야 할 ‘정치적’ 책무를 떠안게 됐다. 이렇게 감사원이 사학 특감에 동원된 것은 감사원법을 위반한 것이다. 더 늦기 전에 정치권의 ‘감사원 독립성 불감증’을 치유하는 데 국민적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다.

사실 노무현 대통령은 감사를 ‘권력 작용’이라기보다는 ‘관리 기능’으로 이해하는 현대적 감사관이 확고한 위정자다. 그래서 전례 없이 직업 경제관료 출신을 감사원장으로 임명하고, 감사원에 ‘평가연구원’을 설립하여 현대적 성과 감사의 제도적 기틀을 다졌다. 감사원 역사에 남을 이런 업적이 무색하게 이번 사학 특감은 감사원의 기조 가치인 독립성을 훼손한 일대 오점이 아닐 수 없다.

김현구 성균관대 국정관리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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