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반병희]직장인이여, ‘新유목민’이 되자

  • 입력 2006년 1월 10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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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의 재미를 즐기는 엑스펀(ex-fun)족, 검증된 제품만 쓰겠다는 애프터유(after-you)족, 변화를 거부하는 온돌족, 정신적 행복을 추구하는 비욘드 보디(beyond-body)족…. 기업 마케팅 담당자들에게 익숙한 종족(種族)들이다. 이들은 마사이족 몽골족 슬라브족 등의 인종(人種) 개념과 거리가 멀다. 추구하는 가치나 생각이 비슷한 집단으로 시대상을 반영한다.

올해에도 새로운 종족이 출현하고 낡은 종족은 소멸하면서 종족 군(群)의 구성은 변할 것이다. 새해 벽두부터 검색어 수위를 다투며 인터넷 공간을 점령하고 있는 것은 고단한 직장생활에 지친 종족들이라고 한다. 종족들의 면면은 어둡고 우울하다. 퇴직 압력으로 창밖을 바라보며 담배만 피워 대는 면창(面窓)족, 강제 퇴출에 대비해 퇴근 후 전문 자격증 시험을 공부하는 밤터(밤 스터디)족, 정규 직장을 구하지 못해 평생을 아르바이트로 살아가는 파트타임 프리터족 등이 대표적이다.

연초의 인사철을 맞아 고용불안 시대를 살아가는 직장인들의 가슴은 답답하기만 하다. 이달 말 인사를 앞둔 모 대기업에서는 벌써부터 ‘1월 대학살설’이 나돌고 있으며 이웃 회사 중역들은 자기 회사에까지 칼바람이 불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다. 세밑에는 제주도에서 40대 실직 가장이 두 딸에게 크리스마스 파티를 열어 준 뒤 자살했다는 소식이 들려오더니 엊그제는 퇴출 통보를 받은 대기업 임원이 강물에 투신했다. 두 사람이 가족에게 남긴 말은 “나처럼 실패한 인생을 되풀이하지 말라”로 어쩌면 자구까지 똑같은지….

정녕 새해는 밝았지만 직장인들이 비전을 논하고 희망가를 부르기에는 주변이 너무 을씨년스럽다. 승진자는 조진조퇴(早進早退)의 두려움으로, 누락자는 지진조퇴(遲進早退)의 불안에 떤다. 탈출구 없는 막다른 골목에 내몰린 우리 직장인들의 슬픈 초상이다.

정부가 시행 중인 실업급여 신청자도 외환위기 때보다 훨씬 늘어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고 한다. 거리로 내몰린 가장이 그만큼 많아졌다는 얘기다. 올해 우리나라 전체 박사학위 소지자 4만여 명 중 65.5%나 되는 2만5000여 명이 백수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본보는 연초부터 한국의 직장인들의 바람이 담긴 행복한 일터, 미래가 약속되는 일터를 주제로 연속 기획을 내보내고 있다. 일터가 건강해야 가정의 화목은 물론 사회 발전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런 일터를 만들려면 정부, 기업, 직장인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

정부는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고 경영권을 안정시켜야 한다. 경영권에 불안을 느끼는 기업가는 긴 안목에서 사람을 쓸 리가 없기 때문이다. 투자까지 부진하면 새로운 일자리는커녕 있던 일자리마저 줄어들게 된다.

기업도 단기 실적 지상주의에서 벗어나 중장기 성과를 감안한 인사 정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기업은 하루살이가 아니다.

직장인들은 밝고 긍정적인 종족으로 진화해야 한다. 필자는 세계적 지성 자크 아탈리가 정의한 뉴노마드(new nomad·신유목민)족이 되길 제안한다. 도전과 변화, 실험과 개척, 스피드와 유연함, 디지털사회와 세계화, 그리고 끊임없이 움직임을 지향하는 종족이다. 칭기즈칸이 가장 경계한 말은 ‘코르고다크’였다. ‘변화 없이 한곳에만 머무른다’는 뜻이다.

반병희 사회부 차장 bbhe42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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