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마당]기초의원 정당공천제

  • 입력 2005년 7월 14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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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로 지방자치제도 시행 10년을 맞았지만 기대에 못 미치는 측면도 없지 않다. 특히 지난달 말 기초의원에 대한 정당공천을 도입하는 내용을 담은 공직선거법 개정안의 국회 본회의 통과를 계기로 새삼스럽게 정당공천에 관한 찬반논란이 일고 있다. 정당공천 때문에 지방선거가 중앙정치 정쟁의 각축장으로 변질되고 지방자치가 제대로 꽃을 피우지 못한다는 주장과 정당공천을 전면 허용해야 다원적 민주주의 실현 및 헌법정신에 부합한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헌법정신 부합…공직선거에 예외는 안돼▼

기초의원선거의 정당공천 허용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다. 정당공천을 허용하자는 견해가 있는 반면 지방차원에서의 정당 개입은 수많은 부작용을 낳고 있으니 절대로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강력히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모든 법제도에는 장단점이 있기 마련이다. 어느 제도의 도입이 필요하다면 단점과 부작용이 있다고 그 제도의 도입을 포기할 필요는 없다.

도입 여부의 결정 기준으로서 가장 중요한 게 바로 헌법이다. 그동안 논란이 되는 법적 문제를 대부분 정치나 현실논리로 해결해 왔는데 이는 잘못된 현상이다. 현실을 고려하는 것은 당연하나 어디까지나 헌법의 테두리 내에서 이뤄져야 한다.

헌법의 시각에서 볼 때 기초의원 선거에도 정당공천을 허용해야 한다. 왜냐하면 광역의원선거나 기초단체장선거를 포함한 모든 공직선거에서 정당의 후보자추천을 허용하면서 유독 기초의원선거만 정당의 후보자추천을 금지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지방자치제도의 본질과 기능, 평등의 원칙에 반하는 위헌이기 때문이다.

지방자치는 다원적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기능을 가진다. 지방에서는 국가 또는 다른 지자체와는 다른 견해가 형성될 수 있고 이는 지방자치를 통해 반영된다. 오늘날 다원적 민주주의는 정당본위의 선거와 복수정당제를 바탕으로 하는 정당민주주의를 그 근간으로 한다.

즉, 다양한 정책과 강령을 가진 정당이 상호경쟁을 통해 선거에 참여하고 지방행정과 지방의회에서 경쟁할 때 좀 더 효율적으로 주민의 다양한 의사가 형성되고, 그러한 의사가 정책의 결정과 집행에 반영될 수 있다. 따라서 기초의원선거에서 정당을 배제하는 것은 다원적 민주주의의 실현을 내용으로 하는 지방자치제도의 기능에 반한다.

또한 지방자치는 권력상호간의 견제와 균형, 즉 권력통제를 위한 제도적 장치로도 기능한다. 즉, 정책개발과 결정 및 집행권을 중앙정부와 지자체에 기능적으로 분산시킴으로써 중앙정부와 지자체, 지자체 상호간의 수직적·수평적 권력통제를 실현하는 것이다. 이러한 권력통제는 오늘날 정당을 통해서 실현된다. 지방자치제도를 통한 권력통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정당의 개입이 필수적이다. 기초의원선거에 정당의 후보자추천을 금지함으로써 정당 참여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것은 지방자치제도가 가지는 권력통제 기능을 무력화하는 것이다.

기초의원선거에서 정당공천 배제는 평등의 원칙에도 위배된다. 왜냐하면 기초의원선거를 그 이외의 지방선거와 다르게 취급할 만한 본질적인 차이점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 지방차원에서의 견제와 균형의 실현이라는 지방자치의 기본이념에 비춰볼 때 기초단체장선거에서는 정당의 후보자추천을 허용하면서, 그 상대역이라고 할 수 있는 기초의원선거에서 정당공천을 금지하는 것은 정당하지 못하다.

차기 지방선거 때는 기초의원선거에서도 정당공천을 허용해야 한다. 이것이 헌법정신이다.

정연주 성신여대 교수·헌법학

▼공천장사 우려…충성도가 후보결정 좌우▼

지방자치가 전면 실시된 지 10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지방자치는 꽃을 피우지 못한 채 몸살을 앓고 있다. 중앙정부가 권한과 재원을 움켜쥐고 있어 지방자치단체들이 무엇 하나 독자적으로 할 수 없는 데다 지자체장 후보를 공천한답시고 정치인들까지 끼어들어 온갖 횡포를 부리기 때문이다.

지방의 당 대회에서 당원들이 국회의원 지방의원 지자체장 후보를 경선하는 민주적 공천방식과는 달리 사실은 해당 지역구의 국회의원이 충성도에 따라 후보를 ‘낙점’하는 독단적 공천방식이 남아 있다. 정당공천제는 지방자치의 암적인 존재다.

기초단체장은 민선 이후 중앙정부로부터 어느 정도 자주성을 확보했지만 정당공천제란 새로운 올가미에 걸려 지역구 국회의원에게 예속되고 정당으로 중앙집권화가 됐다. 국회의원의 지시에 따라 지방의회 의장단과 상임위원장들을 선출하고 중요한 의결을 하는 것이다.

또 정당공천제 때문에 지방선거는 지역 일꾼을 뽑는 행사가 아니라 정당 간의 사활을 건 각축장이 됐다. 지방선거에서 야당은 국정 난맥상을 들춰 “현 정부의 실정에 대한 국민의 심판을 하자”고 외쳤고, 여당은 “당리당략만 일삼는 야당을 응징해야 한다”며 지지를 호소했다. 선거는 과열되고 선거 비용은 눈덩이처럼 커졌다.

정당공천제 때문에 지역 분열 현상이 지방 정치에서도 그대로 반복된다. 영남에서는 한나라당 후보들이, 호남에서는 열린우리당과 민주당 후보들이 지자체장과 지방의원을 석권했다.

지자체장 소속 정당과 의회의 과반 의석을 점한 정당이 같은 곳에서는 의회의 견제와 감시기능이 미약했고, 지자체장과 1당의 소속 정당이 다른 곳에서는 지방의회의 반대를 위한 반대로 자치행정이 마비되기도 했다. 나아가 비리의 온상이 되기도 했다. 특정 정당의 공천만 받으면 당선 가능성이 높은 영호남 지역에서는 뒷돈 거래가 더 심했고 헌금도 많았다. 공천비리로 사법처리된 것은 21건에 불과하지만 정치인들의 공천 장사는 전국적 현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자체장의 73%, 지방의원의 88%가 정당공천을 비리나 부정의 유발 원인으로 본 설문 조사 결과도 있다.

기초단체장들은 지역구 국회의원의 과도한 간섭과 무리한 요구에 몸서리를 치며 정당공천제에 강력히 반대해 왔다. 하지만 여야 정치인들은 자기의 이익 챙기기에 급급해 반대를 묵살하고 정당공천제를 존치시키기로 야합했다. 더 나아가 기초의원 후보도 공천하도록 법을 개정했다.

이와 관련해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는 최근 모임을 갖고 “공직선거법이 지방 정치의 중앙 예속화를 심화시키고 있다”는 내용의 결의문을 채택했으며 국회에서 시위하기도 했다. 이들은 가을 정기국회에서 개정 입법 청원을 결의하기도 했다.

우리는 국회의원 탄핵이나 소환제도가 없다. 국회의원 소환제를 도입해 악법을 통과시킨 국회의원들은 여론에 의한 탄핵 심판을 받아 마땅하다.

정세욱 한국공공자치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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