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오명철]‘486’

  • 입력 2004년 11월 19일 18시 17분


1990년대 중반 한 재미 철학자는 흥미로운 전망을 했다. “한국 사회가 앞으로 386세대 때문에 큰 홍역을 치르게 된다”는 것으로, 1980년대 중반 서울대에서 방문 교수로 강의를 하면서 그런 결론을 얻게 됐다고 했다. 특히 주사파(主思派) 운동권 학생들의 경직된 사고와 단순 논리에 그는 절망했다고 한다. ‘설마’하는 생각으로 흘려들었던 그의 ‘예언’은 10년 만에 현실이 됐다. 문제는 노무현 정권 출범에 결정적 기여를 한 그 ‘386’들이 이제 10∼20년 장기 집권을 도모한다는 점이다.

▷‘60년대 태어나 80년대 대학을 다닌 30대’를 함축적으로 설명한 조어(造語)인 ‘386’이 우리 사회를 설명하는 핵심 키워드로 등장한 것은 1990년대다. ‘80년 광주’에 대한 울분을 공유한 이들은 시대의 금기(禁忌)였던 반미(反美)의 벽을 뛰어 넘었고, 일부는 주체(主體)의 늪에 빠졌다. 암울한 시대적 현실 앞에서 그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의식 과잉이 됐고, 소련과 동유럽의 몰락에도 불구하고 사상적 회심(回心)을 한사코 거절했다.

▷‘386’에 대한 평가는 극단을 오간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이해가 남다른 자주(自主) 세력이라는 호평과 ‘홍위병’ 또는 ‘악의 축’이라는 혹평이 교차한다. 사실상 현 정권을 섭정(攝政)한다는 얘기도 듣는다. 하지만 세상에 변치 않는 것이 어디 있으랴. 어느덧 불혹(不惑)의 나이에 이른 왕년의 ‘386’들이 제한적이고 폐쇄적인 경험 틀을 회고 반성하며 ‘486 자유주의 연대’ 결성을 선언했다. 컴퓨터도 386, 486, 586으로 업그레이드했듯 386세대 또한 사고의 진화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독재정권 시절 우리 사회는 운동권에 대해 퍽 관대했다. 운동권 학생을 마치 독립운동가처럼 감싸던 시절도 있었다. 운동권은 면학파에 대해 도덕적 우월감을 갖고 있었고, 열심히 일해 성공한 동창에게서 술을 얻어 마시면서도 큰소리를 치기 일쑤였다. 그로 인해 운동권은 역사와 시대의 흐름을 따라잡지 못했고, 미워하면서 기득권을 닮아 갔다. 운동권은 이제 대학에서조차 ‘스포츠권’으로 비하되고 있다. 고여 있는 물은 반드시 썩게 마련이다.

오명철 논설위원 osc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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