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석학대담]美 철학자 리처드 로티 교수 인터뷰

입력 2001-01-04 19:02수정 2009-09-21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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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 석학대담 시리즈의 하나로 미국의 대표적인 철학자 리처드 로티 교수를 E메일 인터뷰를 통해 만났다. 행동하는 지식인으로 널리 존경받는 그로부터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21세기 전망, 철학의 장래 등에 대해 들어봤다.》

▽이유선 교수〓‘미국―미완의 프로젝트(Achieving Our Country)’라는 책에서 교수님은 미국의 ‘민주주의 프로젝트’가 아직 끝나지 않았으며, 미국인들은 이를 완성해 나가야 하는 의무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미국에 대해 희망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미 대통령선거는 미국의 민주주의 프로젝트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리처드 로티 교수〓이번 선거는 재앙이라고 할 만합니다. 그것은 단지 부유하고 이기적이며 탐욕스러운 사람들의 정당이 가난한 사람들의 정당을 이겼다는 이유에서만이 아니라, 미국에서 유일하게 대중의 존경을 받아 온 대법원이 불명예를 자초하고 국민들로부터 존경을 잃었다는 이유에서도 그렇습니다. 대법원은 공화당의 부시 후보가 현직에 있는 다수 판사들의 마음에 드는 사람을 대법원 판사로 지명하기로 약속하자, 그를 대통령으로 선출하기 위해 선거과정에 개입함으로써 스스로 명예를 실추시켰지요. 저는 철학에 대한 민주주의의 우위를 말하면서 미완의 과제라고 할 수 있는 미국 의회 민주주의 제도를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이번 선거과정에서 나타난 일련의 사건들은 이 같은 미국의 민주주의 프로젝트에 적지 않은 악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어요.

 새해 석학 대담
- 美정치철학자 마이클 왈저
- 美 동아시아 전문가 제럴드 커티스
- 美 한반도 전문가 김영진 교수에 듣는다
- 美 철학자 리처드 로티 교수
- 佛 피에르 레비교수-김동윤교수

▽이〓우리는 새로운 세기의 처음에 서 있지만 전지구적 경제 위기 때문에 미래에 대한 낙관적 전망을 갖기 어렵습니다. 교수님은 우리가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오늘날 우리에게 가장 긴급한 실천적 과제는 무엇일까요?

▽로티〓제가 보기에 가장 긴급한 실천 과제는 앞으로 계속해서 닥치게 될 경제적인 재난으로부터 가난한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한 준비에 착수하는 것입니다. 그런 경제적 재난이 어떤 형태로 다가올지에 대해서는 저도 알 수 없지만, 미국에서 경제호황이 지속될 것으로 보이지는 않아요. 아시아와 남미의 통화가 안정적 기반 위에 올라섰다고 볼 수도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가 커다란 문제에 직면해 있다고 확신하고 있어요. 부유한 자들은 이런 재앙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려고 노력하겠지요. 그리고 그들은 가난한 자들에게 모든 고통을 떠맡길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전혀 희망이 없다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이나 2차 대전 후 영국 노동당 정부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많은 일을 했듯이, 프랑스의 조스팽 같은 사람들의 지도 하에 있는 세계 사회주의적 정당들이 새로운 사례를 만들어내면서 시장경제와 사회정의를 조화시키는 전례없는 길을 찾아낼 수 있을지 모릅니다.

▽이〓냉전시대 이후에 많은 지역적 갈등들이 전세계적으로 표면화되고 있습니다. 자문화 중심적인 교수님의 관점에서는 이런 갈등들을 중재하는 데 한계가 있는 것으로 보이는군요. 그런 갈등들을 해결하기 위해 보편적 기준을 가져야 한다고 믿는 합리주의자들은 교수님의 관점이 상대주의적이 아니냐는 의혹을 갖고 있습니다.

▽로티〓저는 서구의 민주주의가 종교를 사적인 문제로 만드는데 성공을 거뒀다고 생각합니다. 즉, 종교적 신념을 정치의 영역에 끌어들이는 것은 좋지 않은 태도라고 생각하게끔 만들었다는 것이지요. 이것은 고대 로마제국이 보여준 종교갈등에 대한 다신론적 해결책이라고 할 수 있어요. 현대인의 경우 일단 정치공동체의 조건으로서 관용이 필요하다는 것에 대해 합의하고 나서, 당신이 원하는 신앙생활을 당신 마음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식의 해결책이 ‘상대주의적’ 이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지금까지 발견한 해결책 중 실천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나은 방안이라고 생각하지요.

▽이〓포스트 모더니스즘 계열의 ‘문화적 좌파’는 대중에게 정치적 실천력을 갖게 하기에는 너무 사변적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날 세계화는 한편에서는 문화적 다양성을 경험할 수 있는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하면서, 또 다른 한편에서는 우리를 신자유주의적 시장경제 체제 속으로 내몰고 있습니다.

▽로티〓저는 세계화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에 대해 좋은 아이디어를 갖고 있지 못합니다. 다만 제가 두려워하는 것은 세계화의 결과로서 제조업이 선진국에서 제3세계로 빠져나가게 되면, 조만간 민주주의 체제 하에 살고 있는 노동자들이 깊은 절망에 빠지고, 이런 절망감은 민주주의 정부의 붕괴로 이어져, 그나마 유지될 수 있었던 사회 정의의 싹마저 잃게 될 수 있다는 점이지요. 경제 위기가 닥칠 때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대다수의 사람들이 극우적 선동에 넘어갈 위험이 높아 민주주의 자체가 위기에 놓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교수님은 20세기 ‘과학적’ 철학의 흐름에 반대해서 철학을 ‘문학적’ 장르의 일종으로 서술하셨습니다. 21세기에는 철학이 어떤 역할을 하리라고, 혹은 해야 된다고 전망하십니까?

▽로티〓21세기에 철학이 어떤 모습을 할 것이고, 어떤 역할을 맡을 것인가 하는 것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런 상황을 생각해 봅시다. 우리는 이제 새로운 세기에 막 첫발을 들여놓았습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은 어떤 천재가 갑자기 등장해서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방식으로 글을 쓰고 사람들이 그가 제기한 문제에 대해 토론하고 생각할 수 있다고 봅니다. 새로운 세기의 철학은 그런 식으로 등장할 것 같아요. 과학은 어떤 결과를 낳을 것인지, 또 앞으로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인지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어요. 그러나 철학은 과학과는 전혀 성격이 다릅니다. 오히려 철학은 지난 세기에 많은 철학자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중심적으로 다뤘던 문제가 다음 세기에는 그저 우스운 것으로 보이는 일이 종종 일어나는 그런 영역입니다. 그래서 저는 철학을 소설이나 서정시와 유사한 문학의 한 장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정리〓김형찬기자>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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