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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0년 5월 15일 19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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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발굴결과 풍납토성이 그 하남위례성일 가능성이 짙어졌다. 이 대형 판축토성은 고구려의 국내성보다 규모가 크다. 이번에 훼손된 재개발지에서는 고대 궁중 최고관직명 ‘大夫(대부)’ 각자가 새겨진 토기가 발견되고 왕궁터에 준하는 대형건물터도 발굴됐다.
하남위례성은 고구려 장수왕이 백제 개로왕의 목을 벤 역사적 장소. 왕인박사의 일본 선진문물 전래와 근초고왕의 요동지역 경략이 배태된 동아시아 역사의 한복판이기도 하다.
이런 역사 현장의 보존에 우리는 얼마나 무감각한가. 정부는 부여와 공주지역에는 1조5000억원을 투입키로 해놓고도 정작 ‘500년 도읍지’의 보존 책임은 서울시에 떠넘기고 있다. ‘담배소비세를 넘겨받는 대신 풍납토성 보존발굴을 책임진다’는 88년의 양해각서가 그 근거다. 당시 연구결과는 풍납토성이 그저 방위용 성곽 중 하나일 뿐이라는 수준이었다.
우리는 종종 국내성 등 고구려 유적을 방치한다며 중국 당국을 향해 손가락질해댔다. 국내 유산을 이렇게 등한시하면서 그런 비난을 하는 것은 자가당착이 아닐 수 없다. 일본에서는 1960년대 땅값 비싸기로 유명한 오사카(大阪) 한복판에서 발굴된 아스카(飛鳥)시대 궁전 나니와노미야(難波宮)의 보존을 위해 국민 차원의 토지매입 등 보존운동이 펼쳐진 일도 있다. 그 일환으로 지금껏 30년 넘게 39차례의 발굴작업이 이어졌고 이렇게 복원된 유적은 오사카시 21세기 발전계획의 핵심이다.
풍납토성 보존에 평생을 바친 이형구(李亨求)선문대교수가 최근 일본 고고학자들로부터 들었다는 말이 우리의 가슴을 친다. “당신들은 그 유적을 파괴할 권리가 없다. 풍납토성은 한국의 유산일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와 세계의 유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권재현<사회부>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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