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윤영찬/외교부의 '인사外風'

  • 입력 1999년 11월 30일 19시 09분


외교통상부에 ‘바람의 계절’이 왔다. 해마다 여름과 겨울 두 차례에 걸쳐 부는 ‘인사바람’이다.

이 바람의 특징은 다른 부처에 비해 ‘외풍(外風)’, 즉 지연 혈연 학연으로 연결되는 정치권 실세 등 여권 인사를 동원하는 이른바 ‘줄대기’가 눈에 띄게 성행한다는 점이다.

정치권의 한 인사는 얼마전 “A대사 만큼은 꼭 신경을 써달라고 부탁했다”고 실토했고 여권의 한 핵심인사는 “외교부 후배로부터 ‘홍순영(洪淳瑛)장관에게 전화를 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

또 비리혐의를 받고 있는 외교부의 모 인사는 정치권 실세들과의 교분을 과시하다 청와대와 총리실로부터 내사까지 받았다.

12월 중 단행될 인사를 앞두고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다. 장관실엔 홍장관을 찾는 외부 전화가 심심치않게 걸려오고 있다. 특히 이번 인사에는 외교부 직원들이 선망하는 워싱턴에 다섯자리가 비어 이를 둘러싼 각축전이 어느 때보다 치열한 양상이다.

외교부 직원들이 이처럼 인사에 목을 매는 이유는 본인만 이동하면 그만인 다른 부처와는 달리 가족 전체가 해외로 이주해야 하는 나름대로의 ‘특별한’ 사정 때문이다.

‘더운 밥’과 ‘찬 밥’, ‘냉탕’과 ‘열탕’, ‘음지’와 ‘양지’가 천양지차라는 것도 이미 고전(古典)에 속하는 얘기.

게다가 해외근무에서 힘있는 공관장을 만나느냐의 여부가 평생 외교관 생활을 좌우한다는 강박감도 인사에 가능한 한 모든 인맥을 동원하며 유난스럽게 집착하는 이유다.

누구나 자신의 장래와 직결되는 인사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글로벌리즘’의 첨병이라며 자부심을 과시하는 외교부 엘리트들이 발벗고 인사청탁을 위해 뛰는 모습은 아무래도 도를 넘은 ‘추태(醜態)’로만 보인다.

윤영찬<정치부>yyc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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