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을 다녀와서]최규철/北의 門 열리나?

  • 입력 1998년 9월 10일 19시 40분


1998년 9월 북한 사회에서 가장 눈에 띈 구호는 ‘고난속의 행진’과 ‘강행군’이다. 9박10일간 둘러본 평양, 양강도 삼지연군, 평안북도 향산군 등 어디에서나 많이 볼 수 있었던 구호다.

‘고난속의 행진’은 1930년대 항일무력 투쟁 때 극복했다는 여러가지 어려움을 회상시키는 것이다. 2년여 전부터 등장했다는 ‘강행군’은 사회주의 국가 경제협력체제의 붕괴와 자연재해로 인한 식량부족 등의 경제난을 이겨내자는 각오다.

▼ 자력갱생-강행군 구호 ▼

또 곳곳에 나붙은 ‘생산도 학습도 생활도 항일유격대식으로’‘자력갱생’구호는 그 구체적 실천방안을 뜻하는 것으로 느껴졌다.

이 모두가 지금 북한사회가 처한 현실의 여러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북한사회 특유의 ‘우리식으로 살겠다’는 의미로 보였다.

‘위대한 수령’과 ‘경애하는 장군’으로 시작되는 북한주민의 하루는 50년 동안 변하지 않은 것 같다.

백두산 자락 곳곳에 자리한 항일사적지와 평양 만수대의 거대한 김일성주석 동상 등에 쏟는 북한주민의 정성은 남쪽 사람들의 상상을 절할 정도다.

‘수령’과 ‘장군’이 관련된 곳곳의 행적지와 남긴 어록은 북한 주민들의 충성과 효성의 대상이다. 그것은 생활의 중요 부분이기도 하다.

‘민족’과 ‘자주’를 앞세운다는 북한의 모든 대내외정책도 변한 것이 없다. 북한 대외정책과 관련해 한 고위간부는 이런 말을 했다. “중국을 통해 압력을 가하면 우리가 따를 줄 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예전에도 소련이 하라고 해서 우리가 그대로 한 적이 없다.”

언뜻 보면 북한사회의 시계바늘은 멈춰선 것 같고 건물과 차량, 거리 모습에서 잿빛이 강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그것이 북한 모습의 전부는 아니다.

“몇년전 우리 군의 무력을 과시하는 부대사열이 평양시내에서 벌어졌다. 많은 시민이 감동했다. 그리고 외부의 군사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힘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면 우리가 잠시 배를 곯는 것은 참을 수 있다고들 했다.”

▼ 상호이해-신뢰가 관건 ▼

한 간부가 전해준 이 말엔 자존심이 깔려 있는 듯했다. 북에서는 그것을 ‘우리식 사회주의’에 대한 신심(信心)으로 표현했다.

이번 9박10일간의 방북기간중 소중하게 다가온 느낌은 북한사회도 변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었다. 여기서 ‘변할 수 있다’는 뜻은 당장 중국의 개혁 개방정책이나 동유럽 구사회주의 국가의 개방과는 다른 것이다. 바로 남과 북 사이에 이해와 신뢰를 높여갈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지난 50여년 동안의 대결과 불신은 상호이해의 부족에서 비롯됐다는 것에 북측 인사들도 이견을 달지 않았다.

한 북측인사의 “상대방 마음의 문을 조금씩 열어가면서 그 속마음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은 가슴에 와 닿았다.

이번 동아일보 방북대표단을 맞으며 북측 인사들은 ‘큰 사변’이라고 했다. “솔직히 말해 남측 기자들이 온다는데 대해 반대도 많았다. 과거의 예를 봐서 무엇이 도움이 되겠느냐는 주장이 컸다. 그러나 민족지 동아일보의 취재활동을 한번 믿어보자는 설득이 주효했다. 지금까지는 생각도 못했던 ‘큰 사변’이다.”

북한 사회가 변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실례다. 그러면서 그 인사는 남북 모두 달걀처럼 조심스럽게 다뤄야 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중국의 베이징(北京)과 평양 사이에는 주2회 북한 고려항공의 정기 항공편이 있다. 2년여 전부터 이 항로를 통해 남측 인사들의 방북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아직까지는 한정된 숫자이지만 그 역시 변화의 시작이다. 남북간에 금강산 관광개발계획이 본격 논의되고 있는 것도 큰 틀에서 변화다.

▼ 민간교류 늘어날 전망 ▼

양측 당국간의 대좌는 아직은 먼 듯한 분위기였으나 민간 차원의 교류는 좀더 늘어날 전망을 갖게 했다. 북한측의 한 간부에게 물었다. “최근 민간차원에서 남측 인사의 방북이 늘고 있는데 이러한 추세는 계속되리라고 보는가?” “점차 늘어날 수 있을 것”이란 대답이었다. 고려항공편(JS151)으로 평양을 떠나며 “그렇다면 어떤 형태로든 점차 남북교류의 모습이 갖춰질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최규철 (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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