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역사에서 우뚝 솟은 지도자로 추앙받는 백범 김구선생은 상인(常人) 집안 출신이었다. 백범일지를 읽어가다 보면 문중의 어느 할아버지가 혼인날에 서울 다녀오던 길에 사두었던 관(冠)을 꺼내 쓰고 새 사돈을 맞았다가 양반들에게 발각돼 관이 찢어지는 소동이 벌어지고 이후로 집안 어른들은 다시 관을 못쓰게 되었다는 대목이 나온다. 백범은 어른들로부터 이 이야기를 듣고 억울해서 울었다고 적고 있다
▼옛날 농촌마을에서는 사돈 집안 사람들이 처음 찾아오는 날에 가난하게 보이면 혼담이 깨질까봐 별별 웃지못할 허세를 꾸몄다. 벼대신 볏짚을 넣은 통가리를 마당 한가운데 만들어 놓거나 이웃집에서 소를 빌려다 매어놓기까지 했다. 지금 도시에 사는 젊은이들은 웬 소냐고 묻겠지만 해방 직후까지만 하더라도 농촌에서 소가 있는 집은 부자로 꼽혔다
▼예나 지금이나 결혼식날 허세부리는 것은 마찬가지인 것같다. 한국 소비자보호원에 따르면 예단 예물 예식 피로연 등 혼수 의례 비용이 평균 3천6백79만원이다. 1인당 국민소득을 고려하면 미국 영국 일본보다 20∼30배 높다는 조사다. 축의금으로 당일 예식비용의 73.5%를 충당하고 축의금을 보낼 온라인 계좌번호를 인쇄한 청첩장까지 등장했다. 남에게 폐를 잔뜩 끼치는 것으로 인생의 첫 출발을 하는 셈이다
▼자기 과시욕과 남의 이목을 중시하는 체면문화, 일생에 한번뿐이라는 생각이 호화 사치 결혼식을 조장한다. 수백만원짜리 드레스를 빌리고 수천만원짜리 다이아몬드 반지를 예물로 주느니 그 돈으로 저축을 해두었다가 살림을 키우는 종잣돈으로 쓰는 것이 현명한 재테크일 것이다. 부모가 사준다고 몇년만 지나면 구닥다리가 될 혼수를 한 트럭씩 사가지 말고 부부가 알뜰살뜰 필요할 때마다 하나씩 구입하는 것도 인생살이의 재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