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사발행인 연두제언]국민통합 의식혁명 나서자

  • 입력 1996년 12월 31일 18시 15분


한 나라와 사회가 발전해가는 순환주기를 10년으로 볼 때 6.29민주화 이후 10년째가 되는 1997년, 한국은 발전과 정체의 중대한 기로에 와 있음을 절감한다. 올해는 어느 해보다 커다란 시련과 도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어 국민 모두에게 현명한 선택이 요구되는 해다. 정치적으로는 金泳三(김영삼)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1년을 마무리짓고 차기 문민대통령을 뽑는 국민적 선택의 해다. 무엇보다도 시급한 일은 경제를 회생시켜 국민불안을 덜어주고 국가경쟁력을 키우는 것이다. 남북관계의 경우 북한의 잠수함 침투사건 사과를 계기로 4자 회담을 성사시켜 통일에 한걸음 다가서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동시에 21세기를 불과 4년 앞둔 지금 우리는 새로운 1천년을 준비해야 한다. 이처럼 안팎으로 어려운 과제들을 눈앞에 두고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분야에 걸쳐 심각한 정체와 마찰과 갈등이 계속되고 있음으로 해서 나라의 장래가 불투명하고 국민의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다. ▼ 경제 위기의식 팽배 ▼ 10년전 우리는 시민항쟁의 결과로 정치적 민주화의 기틀을 다졌으나 아직도 주요 법안들이 여당의 수(數)의 논리로 변칙처리되는 권위주의적 의정의 파행을 겪고 있다. 경제는 한마디로 파국에 직면해 있다는 위기의식이 공공연하다. 산업현장은 노동법개정을 둘러싸고 파업과 고발의 대치 상태가 다시 우려되고 있으며, 노사간의 심각한 대립에 공권력이 개입하는 물리적 충돌사태까지도 예견된다. 이같은 현실을 과거에도 여러차례 겪었던 「위기상황」으로만 접어두기에는 너무 안이한 느낌이다. 사회 한구석이 가라앉는 것만 같은 이 구조적 위기에서 과연 헤쳐나올 수 있을까 하는 낭패감이 국민들사이에 팽배해 있음을 실감한다. 보이는 것만 추락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사회의 도덕률과 윤리의식 또한 어느 때보다 황폐화해가고 있다는 지적이 높다. 졸부들의 금전만능주의는 호화 사치풍조를 만연시켰고 과소비는 해외여행 자유화와 함께 봇물이 터졌다. 시민이나 치안당국 양쪽 모두 강력사건 불감증에 젖어있는 가운데 패륜이 판치는 참담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경제위기, 노사갈등, 윤리의 타락 못지않게 더 심각한 것은 사회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국민들이 지향해야 할 가치관과 비전이 사라져가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우리사회를 지켜주던 근면 검소 절제와 개척의 정신은 퇴색하고 호화 사치 소비 향락의 풍조가 만연함으로써 사회는 활력을 잃고 국가의 경쟁력이 추락해가고만 있는 현실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이같은 총체적 위기의 일차적인 책임은 이 사회 지도층과 정치권에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민주화로 접어든 지난 10년간 정치는 시민의 의욕과 열기를 국가발전의 에너지로 승화시켜주지 못했고, 경제는 어려운 시대에 대비할 구조 개혁의 노력을 게을리했다. 지도자는 지역간 계층간의 갈등을 해소하는 국가경영능력을 보여주지 못했음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김정권이 많은 개혁조치에도 불구하고 평가받지 못하고 있는 것은 독선외에도 인재등용과 정책선택에 정치적 편의주의가 앞섰다는 의심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 허리띠를 졸라매자 ▼ 본인은 4.11총선 직후에 임기 2년을 남긴 김대통령에게 앞으로는 화합과 미래지향의 국정운영으로 남은 임기를 마무리해 줄 것을 촉구한 바 있다(96년4월15일자 동아일보 1면). 또한 대통령은 야당과의 정치적 승부나 개인의 인기, 정권 재창출 같은 눈앞의 정치적 이해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화합과 관용과 절제와 포용력으로 국민통합을 이룰 것을 당부하고 미래지향적 비전을 제시하는 국정운영을 해줄 것을 요망했었다. 최근의 우리 정치현실, 경제위기, 사회갈등 현상은 김대통령이 위와 같은 요구에 부응한 정치를 해왔다고 보기 어렵게 만든다. 지금 국가적인 어려움, 국민적인 위기의식의 책임을 물어 누구를 탓하고 있을 수만도 없다. 정권이, 국가가 해결해 주기만을 기다릴 수도 없다. 우리가 질곡에 빠져있는 동안에도 세계는 변하며 선진국은 앞서가고 있다. 이 난국의 타개를 위해 가장 절실한 것은 모든 국민이 다시 한번 허리띠를 졸라매고 원점에서 새로 시작하는 일이다. 우리 앞에 놓인 어려움을 헤쳐나가고 과제를 풀어가기 위해서는 개인의 이해(利害)와 국가사회의 목표를 조화해가는 슬기와 협조정신이 필요하다. 우리 모두 냉철한 이성으로 공동체에 대한 애정과 열정을 갖고 새로운 사회통합의 이정표를 세워나가야 한다. 그같은 공적(公的) 목표아래 계층과 집단의 이해를 넘어선 국민통합의 노력이 결실을 맺도록 힘을 합쳐나가야 할 때다. ▼ 시련을 도약 기회로 ▼ 정치권은 먼저 모범을 보이고 국민에게 동참을 호소해야 한다. 언론도 예외가 아니다. 동아일보는 이같은 시대적 요구를 실천하는 선구적 언론의 역할을 다할 것을 재삼 천명한다. 그 실행강령으로 새 공동체의식, 새로운 국가목표의 설정을 위한 의식혁명을 제창하는 바이다. 이를 위해 동아일보 발행인으로서 본인은 다시 한번 창립자의 좌우명인 「공선사후(公先私後)」의 정신으로 되돌아가서 시민사회의 건강한 여론형성과 사회통합의 합리적인 대안 제시에 진력할 것을 다짐하면서 이 사회 공동선(共同善)을 위한 이념정립에 독자의, 국민의 동참을 호소한다. 위기는 곧 기회가 될 수 있다. 역사는 우리에게 위기와 시련을 주어왔지만 이를 극복하고 도약할 수 있는 도전과 응전의 기회도 함께 주어왔다. 1997년,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위기와 도전을 새로운 도약의 기회로 삼는, 국민적 의식혁명에 모두 앞장서 나가자. 김 병 관 <동아일보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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