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봉욱 대검찰청 차장이 지난주 검찰 내부망에 올린 글의 한 대목이다. 편지지 4장에 손으로 직접 쓴 글의 제목은 ‘사직 인사. 작별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는 사법연수원 4기수 후배인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이 검찰총장 후보자로 지명된 지 3일 만에 용퇴 의사를 밝혔다. 두 사람은 다른 고검장 2명과 함께 법무부 검찰총장후보추천위원회가 선정한 경쟁 후보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윤 후보자를 지명하기 하루 전까지도 정치권에선 봉 차장 지명 가능성이 많이 거론됐다. 욕심을 낼 만했다. 연수원 기수를 중시하는 검찰에서 윤 후보자가 제친 선배 21명 중 직책상 최선임이 바로 그였다. 하지만 그의 글에는 일말의 서운함도 원망도 배어 있지 않다.
오히려 글의 초점은 검찰 조직의 동요를 가라앉히는 쪽에 맞춰져 있다. 그는 ‘초임 검사 시절 선배들의 가르침’이라며 “어려운 상황에 처하면 훗날 후배들 보기에 부끄럽지 않게 처신하자”고 했다. 퇴임의 당위와 명분을 강조한 것이다. 또 글 말미에서 신임 총장 체제의 발전을 기원했다. “노련한 사공이 험한 바다를 헤쳐 나가듯, 세찬 변화와 개혁의 물결 속에서 ‘공정하고 바른 국민의 검찰’로 새롭게 발돋움하실 것을 믿습니다.”
어쩌면 그런 반듯하고 부드러운 성품이 신임 검찰총장 선정 과정에서 약점으로 작용했을지 모른다. 그가 총장 후보에 포함된 직후 청와대와 검찰 일각에선 ‘난세의 검찰’을 리드할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 제기됐었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적폐청산 수사 및 공소 유지를 마무리하고, 논란이 극심한 검경 수사권 조정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도입 문제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시각이었다.
하지만 당시 그는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검찰의 지난 20년은 특별수사부가 주도했지만, 2020년대는 형사부 전성시대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국민 다수의 관심이 부패 권력 등 거악 척결보다 일반 사건 수사의 공정성 여부에 집중될 테니 그 준비를 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수사권 조정도 거기에 맞춰야 한다는 자세였다. 그는 법무, 인권 등의 분야에서 전문성을 인정받은 기획통이다. 결국 문 대통령은 특수통 윤 후보자를 선택했고, 봉 차장은 훌훌 털어버리고 검찰을 떠난다. 퇴임식은 27일이다.
‘사심(私心)이 없으면 천지가 넓습니다.’
그가 평소 검찰 후배와 지인들에게 선물한 책 표지 뒤에 주로 적은 글귀다. 공직자가 공(公)에 집중하면 자리에 연연하지 않게 된다는 의미도 있을 것이다. 한 검찰 간부는 “선물로 주신 책을 펼치니 그런 당부를 남기셨네요. 차장님께서 바로 그런 분이셨습니다”라고 댓글에 썼다.
이명건 사회부장 gun43@donga.com
서울시청 직원 게시판에 “김어준 퇴출해야” 글 잇달아
박영선 고배 들이켜게 한 여권 인사 5인
진중권 “선동가 된 서민, 우리사이 끝”→ 서민 “죄송, 정권 바뀔 때까지는”
[단독]오세훈의 서울시 “공시가격 재조사하겠다”
대일고·고려대 동문, 야권 ‘대선 승리’ 디딤돌 놓았다
[단독]檢 “이상직, 횡령 38억 대부분 현금 인출”… 자금흐름 추적
Copyright by dongA.com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