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이 한줄]겸허히 과거를 돌아보는 용기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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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해 보세요, 스티븐스 씨. 당신은 왜, 왜, 왜 항상 그렇게 시치미를 떼고 살아야 하는 거죠? ―‘남아 있는 나날’(가즈오 이시구로·민음사·1989년)》

인간은 늘 선택과 후회를 반복한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남아 있는 나날’은 영국의 대저택 달링턴 홀에서 34년간 집사로 일한 스티븐스가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소설이다. 그의 삶 전반이 다뤄지지만 사실 그가 가장 미련을 놓지 못하는 기억은 중요한 선택의 순간이다.

스티븐스에게는 결정적인 선택의 순간이 몇 차례 있었다. 아버지의 임종을 지킬 것인지, 자리를 비우지 않고 계속 일을 할 것인지의 순간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 사랑에 있어서는 그 미련이 더 질기고 길다. 같이 일했던 켄턴 양을 향해 커지는 마음을 드러내는 건 직업정신에 벗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해 애써 그녀를 모질게 내쳤던 순간들도 그의 뇌리에 남아 있다. 자신이 30여 년간 모셨던 달링턴 경이 독일 나치즘에 현혹돼 달링턴 홀이 패전국 독일에 대한 동정을 이끌어내려는 물밑정치의 장으로 활용되는 것을 묵인했던 선택에 대해서도 그는 끊임없이 회고한다.

주목할 부분은 스티븐스가 자신의 선택을 대하는 방식이다. 그는 자신의 선택이 안 좋은 결과를 낳았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순간 늘 ‘품위’를 언급한다. 그가 집사로서의 품위를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내린 선택이라고 합리화하기 위해서다. 최고의 집사가 되기 위해 달링턴 경을 모시는 것 외에는 모두 부수적인 일이 되어야 했다. 그로 인해 자신의 가족, 사랑, 심지어는 가치관까지도 버려야 했음에도 말이다. 누구에게나 선택의 합리화를 위한 기준들이 존재한다. 그게 스티븐스에게는 ‘품위’였을 뿐이다. 스티븐스와 다르다고, 결과를 직시할 용기가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몇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합리화보다는 결과에 대한 겸허한 수용의 자세가 더 필요한 이유는 우리에게 ‘남아 있는 나날’이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선택은 돌이킬 수 없다. 선택의 결과를 예상하지 못하는 나약한 인간에게 선택의 책임을 모조리 묻는 건 잔인한 일일지도 모른다. 다만, 남아 있는 나날을 더 잘 살아가기 위해 한 번쯤은 내 기준과 그에 따른 선택이 옳았는가를 성찰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남아 있는 나날#결과 직시#겸허한 수용#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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