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권순활]‘노블레스 오블리주’ 서경배 과학재단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9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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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외 기업사(企業史)를 살펴보면 창업자가 어렵게 일군 회사가 2세나 3세 경영인의 역량이나 처신 때문에 무너진 사례를 심심찮게 발견한다. 경영에서 창업보다 어려운 것이 수성(守成)이란 말도 있다.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53)은 부친 서성환 창업자가 세운 회사를 수성을 넘어 글로벌 기업으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글로벌 불황 속에서도 아모레퍼시픽그룹은 지난해 연매출 5조6612억 원, 영업이익 9136억 원으로 사상 최대 실적을 냈다. 올 상반기 매출과 이익도 최고치를 경신했다. 대표 브랜드인 한방화장품 ‘설화수’의 작년 매출은 1조 원을 넘었다. 주가 급등에 힘입어 서 회장의 재산 평가액도 급증했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올 3월 발표한 ‘세계 억만장자 리스트’에서 그의 재산은 77억 달러(약 8조6240억 원)로 이건희 삼성 회장에 이어 한국 기업인 중 2위(세계 148위)에 올랐다.

▷서 회장이 3000억 원의 사재(私財)를 출연해 기초과학 육성을 위한 ‘서경배 과학재단’을 설립했다. 기업인의 개인 출연금으로 세운 한국의 첫 기초과학 재단이다. 그는 “돈이 없어 연구를 이어가지 못하는 젊은 과학자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고 싶다”고 했다. “재단이 잘못되면 내 이름에 먹칠하기 때문에 빠져나갈 구멍을 없애기 위해 재단명에 이름을 넣었다”며 무한책임도 강조했다. 일부 기업인의 일탈 때문에 때로 재계가 도매금으로 비난받는 현실에서 “힘들게 번 돈을 멋있게 쓰고 싶다”는 결단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지도층의 도덕적 책임)를 실천한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서성환 창업자는 한국 화장품업계 최초로 연구실을 만들 만큼 기술에 관심을 쏟았다. 서 회장도 어린 시절 TV 만화영화 ‘우주소년 아톰’을 보면서 과학의 힘을 동경했다고 한다. 과학기술에 대한 부자(父子) 기업인의 애정과 열정이 아모레퍼시픽을 약진시킨 밑바탕이었다. “꼬부랑 할아버지가 되기 전에 최초의 과학 분야 한국인 노벨상 수상자를 보고 싶다”는 그의 소망이 이뤄지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권순활 논설위원 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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