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반복되는 무상보육 예산논쟁…‘풀뿌리 민주주의’ 흔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7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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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만 바라보는 지방자치]<上> 중앙정부에 끌려가는 지방

《 올해로 민선 지방자치단체장이 선출된 지 21년째를 맞는다. 강산이 두 번 변할 시간이 흘렀지만 제대로 된 지방자치가 이뤄지고 있다고 보기엔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권한도 책임도 없는 현재의 지방자치제도로는 ‘풀뿌리 민주주의’는 요원할 수밖에 없다. 중앙정부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지자체의 현실을 재정과 행정, 법률 등 3가지 측면에서 3회에 걸쳐 살펴본다. 》
 

2012년 누리과정 대상이 대폭 확대되면서 예산 문제로 매년 중앙정부와 지방의 갈등이 커지고 있다. 올해 1월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의 갈등으로 누리과정 예산 편성이 어려워지자 유치원장과 교사들이 항의 집회를 열고 있는 모습.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2012년 누리과정 대상이 대폭 확대되면서 예산 문제로 매년 중앙정부와 지방의 갈등이 커지고 있다. 올해 1월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의 갈등으로 누리과정 예산 편성이 어려워지자 유치원장과 교사들이 항의 집회를 열고 있는 모습.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21일 경북 경주에서 열린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총회에서 교육감들은 “누리과정 사업 추진은 정부의 잘못된 세수 추계에 근거해 시작됐고 결국 시도교육청의 교육재정을 급속도로 악화시켰다”며 “정부는 누리과정 예산을 따로 편성해야 한다”는 내용의 입장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2012년부터 시작된 중앙과 지방 간 ‘무상보육 예산논쟁’은 올해도 어김없이 재현됐다.

좋은 취지의 정책에도 불구하고 왜 매년 중앙정부와 지방의 갈등이 심해지는 걸까. 매년 돈 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진흙탕 싸움’에 부모들도 지쳐간다.

○ “더 달라고 하지 마라”(정부) vs “땜질식 처방은 안 된다”(교육청)

‘누리과정’이란 만 3∼5세 유아들의 유치원 교육과정과 어린이집 표준 보육과정을 통합해 부모 소득에 관계없이 유아 학비와 보육료를 지원하는 사업이다. 2012년 1월 국무총리실과 기획재정부, 교육부, 행정안전부(현 행정자치부), 보건복지부 등 5개 관계 부처 합동으로 만 3∼4세 누리과정 도입 계획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누리과정 사업이 시작됐다. 복지에 대한 수요가 점점 늘어나면서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사업이다. 누리과정이 시작되면서 사립유치원은 교육비 22만 원과 방과후비 7만 원을, 공립유치원은 교육비 6만 원과 방과후비 5만 원을 각각 지원받았다.

정부는 지자체가 쓸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하면서 예산 모두를 지방교육재정교부금(교부금)으로 쓰라고 했다. 정부는 내국세의 20.27%를 떼서 지방교육 예산으로 주고 있었다. 교부금은 중앙정부가 지자체에 주는 일종의 지원 예산이다. 하지만 지자체에서 돈이 부족하다고 하자 정부는 ‘누리과정’으로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매년 추가로 예산을 내려보냈다.

올해 누리과정에 필요한 예산은 유치원 1조8994억 원, 어린이집 2조1134억 원 등 모두 4조128억 원. 교육부는 “지난해 10월 누리과정 전액을 시도교육청에 내려보냈다”고 말한다. 하지만 교육청은 돈이 없다며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하지 않았다. 그러자 정부는 22일 임시 국무회의를 개최하고 11조 원 규모의 추경예산을 확정해 교부금 1조9331억 원을 추가로 편성했다. 중앙정부는 “추가경정을 통해 올해 교부금을 더 주었기 때문에 지방에서 충분히 편성가능하다”고 말한다. 교육부는 이 돈으로 교육청들이 돈 부족으로 편성하지 못한 누리과정 1조1145억 원과 올해 만기가 돼 돌아오는 지방교육채 5000억 원을 모두 내고도 남는다고 주장한다.

시도교육감들의 입장은 전혀 다르다. 지금과 같은 ‘땜질 처방식’ 교부금 증액 방식이 아니라 아예 누리과정 예산을 중앙정부가 별도 편성해 지방에 줘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가 좋아야 내국세도 많이 걷히는데 지금처럼 저성장 시대에 부동산 경기까지 침체되면 내년에는 교부금이 얼마나 내려올지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시도교육감들은 21일 결의문을 통해 “교부금은 학생 교육활동과 초중고를 위해 써야 한다”고 말했다. “형님들 공부하는 예산 뺏어 아우들에게 쓰란 말이냐”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만 3∼5세 무상보육 비용을 대느라 정작 필요한 우레탄 운동장 교체, 방과후 예술 활동, 학교 안전시설 구비에 소홀해진다는 설명이다.

지자체장들도 호소에 나섰다. 6월 시흥 화성 광명 고양 오산 등 경기도 14개 시군은 국회를 찾아 “누리과정 예산을 국가가 부담하도록 법률로 명시해 달라”고 촉구했다.

○ 예산 때문에 반복되는 중앙정부와 지방 갈등


이런 갈등의 원천은 결국 돈이다. 중앙정부와 지자체 모두 돈 걷을 곳이 궁하다 보니 나타나는 현상이다. 국고보조사업을 편성할 때 지방정부의 의견이 반영되기도 어려운 구조인 것도 대화를 어렵게 만든다. 행정자치부 소속으로 지방재정부담심의회가 설치돼 있지만 책임 있는 역할을 기대하기 어렵다. 프랑스의 경우 부처 장관과 시도지사, 시군구청장 대표로 구성되는 대통령 주재 지방재정부담결정위원회가 있다. 국회 중앙정부 지방정부 간에 합의되지 않은 사안은 지방정부에 재정 부담을 전가할 수 없도록 제약이 많다.

시도교육청이 어린이집까지 지원해야 되는지 법적 논란도 여전하다. 전국시도지사협의회 김홍환 박사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 1조에 따라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은 교육기관에 투입해야 하는 재원이므로 시행령을 통해 보육기관인 어린이집에 투입하도록 한 것은 위임 범위를 초과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배인명 서울여대 행정학과 교수는 “지금과 같이 중앙과 지방이 반목해서는 재정이 낭비되고 저출산 극복 같은 국가 과제를 달성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배 교수는 “취약계층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복지사업의 경우 중앙정부의 재정적 책임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병호 부산대 경제학과 교수는 “앞으로도 지출을 줄이든지 증세를 하든지 해야 하는데 둘 다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이번 추경 예산으로 교육부는 ‘문제가 해결됐다’고 생각하지만, 해결되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노지현 isityou@donga.com·황태호 기자
#중앙정부#지방행정#지방자치#누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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