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오승렬]북한, 핵실험하면 지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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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5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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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렬 한국외국어대 중국학부 교수
오승렬 한국외국어대 중국학부 교수
미국 조야를 포함한 지구 곳곳에서 북한의 3차 핵실험 임박설이 제기되고 있다. 이르면 일주일 내에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할 수 있다는 경고까지 나왔다. 이러다가 북한이 ‘국제사회의 기대’에 밀려서 정말 핵실험까지 갈까 우려된다. 2월 29일 미국과 영양지원 및 핵개발, 미사일 발사 유보 합의까지 갔던 상황이 두 달 만에 어찌 이리 됐는지 딱하다.

사실 북한은 지난해 12월 17일 김정일 사망 바로 다음 날 북-미 간 뉴욕 채널을 통해 그동안 미국과 진행했던 협의가 유효함을 암시했고, 이 와중에도 올봄까지 14개 이상의 대외경제 관련 법령을 정비해 왔다. 발단은 4월 13일의 로켓 발사다. 국제사회의 거듭된 ‘요청’에도 불구하고 불가사의하게 북한은 성공 확률이 낮은 줄 알면서도 발사를 감행했고 ‘역시나’ 실패했다.

4시간 만에 북한 스스로 기다렸다는 듯이 공표한 참담한 실패에도 불구하고 4월 15일 김일성 100회 생일에는 진위가 의심스러운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과시했다. 열병식 단상에 선 김정은은 20분 연설에 웃음까지 날렸다. 그날 저녁 폭죽과 춤이 평양을 덮었다. 김정일이 사망한 지 4개월도 안 돼서다. 북한으로 하여금 도대체 무엇이 앞뒤가 맞지 않는 일련의 행동에 나서게 했을까. 북한 입장에 대한 시나리오는 다음과 같다.

3대 세습 권력의 취약성으로 인해 북한은 이미 집단지도체제로 들어섰다. 무엇보다 영원한 당 총비서와 국방위원장 직을 김정일에게 넘겨주고 김정은이 취한 노동당 제1비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직함이 지닌 함의가 무엇인지 새겨볼 필요가 있다.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주체’의 가계(家系)가 주는 군주적 카리스마로 인해 김정은의 상징적 역할은 존중될 수 있다. 물론 김일성 생전부터 이미 북한을 관리해 왔던 김정일과 달리 김정은 혼자 ‘3년상’과 유훈통치로 북한을 밀고 갈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북한의 신지도부 집단은 김정일 노선의 지속성을 강조하면서도 새로운 시작이 필요한 정책 딜레마에 빠졌다. 김정일의 핵개발 유훈 및 선군정치 노선에 대한 충성은 로켓 발사 정도로 대체하고 새로운 시작을 위해 일련의 행사를 서둘렀다. 중국 국경에서 50km 지근거리인 동창리 발사대를 사용하고 남중국해 쪽으로 탄도를 잡은 것 역시 중국에 대한 지나친 의존을 경계한 김정일 유훈을 의식해서다. 중국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의장성명 참여는 그 결과다. 북한 신지도부는 이제 ‘정상적 환경에서 새 출발’을 하고 싶은 것이다. 로켓 발사는 대내외적으로 김정일 시대의 지속성을 보여주기 위한 최소한의 상징이었다. 이 같은 사정을 외부 세계가 좀 알아주기를 바란 것 아닐까.

이제 과제는 새 출발이다. 더 머뭇거리다간 기회를 놓친다. 부지런히 새로운 경제정책을 내놓고, 6자회담 틀 안에서 핵 문제와 평화 문제를 진솔하게 논의하면 된다. 개혁개방이라고 부르지 않고 김정일의 유훈이라고 해도 좋다. 그동안 개성공단에서 육성된 숙련 노동력과 축적된 경험은 큰 자산이 될 것이다. 북한이 고대하는 북-미 정상화도 열쇠는 북한이 쥐고 있다. 베트남의 도이모이(개방·개혁정책)가 1995년 미국과의 수교를 끌어냈음은 역사적 사실이다.

이번에 북한이 자칫 자존심과 핵실험을 혼동해 국제사회의 ‘핵실험 예상’을 충족한다면 정말 북한은 지는 거다. 새 지도부조차 단추를 잘못 끼운다면 누가 북한을 대화상대로 존중하겠는가. 국제사회는 북한의 3차 핵실험 여부를 북한 신지도부에 대한 리트머스 시험지로 삼고 있다. 지금 북한 처지에서 핵실험을 접는 것은 자존심이 상하는 일일 것이다. 그렇지만 그 누가 중국 한나라의 한신(韓信)이 불우했던 젊은 시절 대의를 위해 자존심을 꺾었다고 비난할 것인가.

오승렬 한국외국어대 중국학부 교수
#북한#핵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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