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서 살아보니]카이탄 페르난데즈/인도의 여유를 소개합니다

  • 입력 2004년 5월 7일 18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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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태어난 인도 콜카타 출신의 시인 타고르는 한국을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고 말했다. 그러나 만약 타고르가 요즘의 한국을 봤다면 다음과 같은 표현으로 바꾸지 않았을까. ‘바쁜 아침의 나라, 한국.’

2000년 이후 한국에서 일해 온 나는 지난달 두바이에서 열린 국제은행 세미나에 한국대표 자격으로 참가했다. 그 자리에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한국의 정보기술(IT) 시장이 급속하게 성장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냐”이다. 나는 ‘우수한 두뇌’ ‘강력한 정부지원’ 등에 대해 설명한 뒤 마지막에 ‘빠른 것을 추구하는 국민성’을 꼽았다.

항상 더욱 빠른 것을 원하고 새로운 것을 바라는 한국인의 습성은 한국기업이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고, 한국 소비자들이 만족하는 서비스 수준이 바로 글로벌 수준의 척도가 될 수 있도록 해 주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러나 ‘서두르면 일을 그르친다(Hurry makes waste)’는 서양 속담이 있듯이 빠른 것에 집착하면 내실을 쌓기 힘든 경우가 많다. 속도만을 추구하다 보면 내용이 부실해지기 쉽고, 이는 사회적인 신뢰를 쌓는 데 큰 장애 요인이 될 수 있다.

한국인들도 이제 한 걸음 쉬면서 주변을 둘러볼 때가 되지 않았을까. 생활과 업무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여유를 갖는 것이라면 속도를 약간 희생해도 크게 아쉬울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지난해 우리 가족은 한국 여행객들과 함께 중국을 다녀온 적이 있다. 처음에는 말이 잘 통하지 않는 한국 여행객들과 함께 갈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을 했으나 오히려 이런 기회를 통해 한국인을 더 잘 이해하게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여행을 결정했다.

그러나 막상 걱정했던 언어소통보다 여행지에서의 관람 방식의 차이가 더 큰 문제로 다가왔다. 베이징(北京)에 도착해 나와 아내는 쯔진청(紫禁城)의 웅장한 모습에 감탄하며 역사적 배경을 딸에게 자세히 설명해 주고 싶었으나 다른 일행은 사진만 찍고 급하게 버스에 올라탔다. 다른 여행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사진만 찍고 간단한 기념품을 구입한 뒤 서둘러 버스에 올라탔다.

같이 간 여행객에게 “왜 이렇게 서둘러 구경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그래야 많이 보죠, 그렇게 천천히 다니면 반도 못 볼 테니, 다음 목적지에서는 빨리 버스로 돌아오세요”라고 대답했다.

물론 단체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남을 배려하는 마음과 단체행동이다. 그러나 쉬기 위한 여행에서조차 사진만 찍고 서둘러 다음 목적지로 쫓기듯이 가는 한국인의 모습에서 ‘삶의 여유’를 느낄 수 없어 안타까웠다.

인도에서 태어나 자란 나는 ‘사색’과 ‘기다림’의 문화에 익숙하다. 최근 한국에서 인도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지고 있는 것도 바쁜 생활의 리듬에 지친 사람이 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카이탄 필리페 페르난데즈

HSBC은행 서울지점 상무

약력 : 1960년 인도 콜카타에서 태어나 콜카타대에서 회계학을 전공했다. 83년 HSBC은행에 입사했으며 2000년 한국에 왔다. 축구를 좋아해 현재 사내 축구클럽에서 라이트윙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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