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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지금/주전 생존경쟁]⑦니시자와

입력 2002-05-06 18:57업데이트 2009-09-18 0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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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품어온 투지를 경기로 표현▼

‘대표선수? 아무래도 좋다.’니시자와 아끼노리(西택明訓)의 생각은 이렇듯 황폐해져 있었다.

98프랑스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이 벌어지고 있던 97년 10월, 일본은 월드컵 첫 출전이 거의 확실한 상황이었다. 시즈오까 합숙훈련 중 가진 연습경기에서 니시자와의 플레이에 불만을 품은 오까다 감독은 ‘정신자세를 포함한 모든 면에서의 판단’이라며 니시자와에게 대표팀에서 빠져줄 것을 요구한다.이는 언론에‘유례없는 강제송환’이라고 보도 되었다.

“감독과 면담을 가진 뒤 대표팀을 떠나게 되었다. 그런데 기사가 사실과 다르게 마구 쓰여졌다. 인간불신이라고 말해야 하나…. 대표팀 동료들과는 사이가 좋았고 앞으로도 열심히 뛰어주었으면 하는 바램이었지만 그 속에 내가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마음이 보이지 않는다. 투쟁심이 없다.’니시자와를 표현할때 자주 사용되는 말이다. 스페인이나 영국으로 이적한 뒤에도 이시자와는 감독의 눈에 그렇게 비쳤기 때문에 출전기회를 놓쳤다고 한다.

“의지가 없겠습니까. 다만 표현하는게 서툴 뿐입니다. 또한 모두 드러내는 게 좋은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모든 것은 경기장 안에서 보여지지요. 수줍음이 많고 표현에 서툰 그는 손해라는 것을 알면서도 사는 방법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

가슴 속에 품은 야심을 실제로 경기에서 선명하게 나타낸 것은 2000년 6월 모로크원정이었다. 2년 9개월만에 국가대표팀간 경기(A매치)에 출전기회를 잡았고 상대는 프랑스였다. “개인적으로도 세계최고인 팀과 상대해 보고 싶었다.”

세계챔피언을 꼼짝못하게 만든 오른발 발리 슛이 네트에 꽂혔다. 이 경기 이후 대표팀이 치른 27경기 가운데 16경기에 선발되었다.

니시자와는 혼자만의 힘으로 길을 걸어왔다. 예전 대표시절, 그리고 유럽에서 활동하던 때 느꼈던 고독감은 이제 없다.

필요한 것은 ‘조화’다.

3월 21일 우크라이나 전에서 그와 투톱을 이룬 야나기사와는 “확실하게 공을 키핑해 주었던 니시자와의 플레이가 효과적이었다” 고 회고한다.

니시자와는 말한다. “주변을 활용하고 싶다. 누구랑 짝이 되든 상관없이 어떠한 형태로든 대응 할 수 있도록.”

같이 생활하고 경기를 뛰면서 대표선수들은 ‘자신들의 팀’이라는 애착을 갖게 되었다. 여러 가지를 시도해 보면서 여기까지 온 것인 만큼 무엇이든 망설임 없이 하면 잘 될 것이다. 5년전에 한때 꺼져가던 정렬이 다시 불붙고 있다.

▼니시자와 아끼노리

A매치 25경기 출장, 9득점.

76년 6월 18일생. 시즈오까현 출신.

180cm, 71kg.

강력한 슈팅능력은 물론 부드러운 패스도 할줄 아는, 강함과 부드러움을 동시에 지닌 포워드.

스페인, 영국을 거쳐 J2오사카에 복귀.

<아사히 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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