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여자의 사랑(259)

  • 입력 1997년 10월 4일 20시 53분


숨은 그림 하나 〈11〉 태하의 전화는 은백에 도착한 다음 한 시간쯤 후에 걸려왔다. 그 시간 동안 그녀는 내내 자신의 책상 앞에 앉아 독립군 생각을 했다. 참 이상한 사람이야. 긴 시간은 아니지만 일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그렇게 깊고도 뜨겁게 그를 만나고 사랑하는 동안 사진 한장 함께 찍은 것이 없다는 것이 마치 그가 자신에게 마음속 깊이 새긴 사랑말고는 어떤 흔적조차 일부러 남기지 않기 위해 그랬던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하기야 그때 함께 사진을 찍을 기회 같은 건 처음부터 없었던 것인지 모른다. 언제나 두 사람만 있었고, 그것만으로도 두 사람 사이에 지워지지 않고 오래 남을 그림같은 생각이 들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딱 한번 함께 사진을 찍을 기회가 있기는 했었다. 그해 겨울방학을 앞두고 함께 정동진에 갔을 때였다. 그때 사진을 찍지 않겠느냐고 다가와 말하던 사진사가 있었다. 아뇨, 하고 사진사를 향해 그가 말했고 그녀 역시 그때 자신들의 그림을 그 사진사가 방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그는 그녀의 기억 속에 말고는 함께 한 단 하나의 그림조차 남기지 않고 떠났다. 저 헬멧말고는…. 태하의 전화는 책상 앞에 앉아 그렇게 물끄러미 헬멧을 바라보고 있을 때 걸려왔다. 『도착했군요』 여보세요, 하자 태하가 말했다. 『예. 잠시 전에요』 『사무실로 전화를 하지 그랬어요』 『바쁘실 것 같아서…』 『아뇨. 아무리 바빠도 나한테 그보다 더 바쁜 일은 없는 거지요. 그런데 서영씨는 뭐하고 있어요?』 마치 그런 자신을 바라보듯 태하가 물었다. 『아무것도 안해요』 전화를 받으면서도 여전히 헬멧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그녀가 대답했다. 『오늘 사무실에 나와서 무얼 했는지 알아요?』 『무얼 했는데요?』 『그 사람에 대한 자료를 좀 뽑았어요』 『어떤…』 『형이 사고를 당하던 무렵 전후해서 그 집 측근에 있었던 운전기사들을요』 『뭐가 있나요?』 『아뇨. 아직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알아봐야 할지 모르겠어요』 『애쓰네요, 태하씨 혼자…』 <글:이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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