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80그때 그시절엔]<20>황미나의 ‘만화방 추억’

  • 입력 2004년 12월 19일 18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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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의 만화방 풍경. 황미나씨는 “70년대엔 문고판 만화책인 ‘클로버문고’가 인기를 끌었다”며 “‘바벨 2세’가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70년대의 만화방 풍경. 황미나씨는 “70년대엔 문고판 만화책인 ‘클로버문고’가 인기를 끌었다”며 “‘바벨 2세’가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70년대 초중고를 다닌 나는 당시 최고의 오락이었던 만화에 푹 빠져 있었다. 형제가 많아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만화를 볼 수 있었던 나는 글을 읽지 못할 때엔 스스로 만화나 이야기를 지어 동생에게 전해 주기도 했다.

동생은 계속 내게 “그래서?”를 연발했고, 나는 동생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동화든, 내가 대강 지었던 내용이든 무조건 그 뒤를 이어 이야기해줘야 했다.

글을 읽을 수 있게 된 뒤 나는 눈물 짜는 순정만화보다는 호쾌한 전쟁물이나 중국 무협만화에 빠져 만화가게를 들락거렸다.

당시 만화가게엔 만화만 아니라 TV도 있었고 겨울이면 가운데에 연탄난로를 두고 불을 피우곤 했다. 다른 아이들은 TV를 많이 봤으나 나는 무조건 만화를 골랐다. 일주일에 한 번 부모의 허락을 받고 가는데, 그곳에서 다른 짓(TV 보기)을 하는 게 스스로 용납되지 않았던 것이다.

좁고 기다란 나무의자에 쭈르륵 앉아 내가 고른 만화책을 깔고 앉아 다음 권을 보는 그 재미. 그러나 어느 날 그 재미에 빠져 머리가 어지러운 것도 참아가며 만화를 보다 그만 기절한 일이 있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내가 토해놓은 듯한 음식물들이 잠시 보였지만, 이내 다시 정신을 잃었다.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땐 큰오빠의 등에 업혀 있었다. 연탄가스 중독이었던 것이다. 그 와중에도 나는 미처 다 보지 못한 만화만 생각하곤 다시 가야 한다고 징징거렸던 기억이 있다.

좁디좁은 가게와 불편한 의자, 그리고 연탄난로…. 어린 시절의 내 즐거움은 모두 거기에 있었다. 임창 선생님의 ‘땡이’를 얼마나 좋아했던가…, 허영만 선생님의 초기작들을 또 얼마나 좋아했던가…, 이상무 선생님의 만화에 나는 얼마나 울었던가….

고1 때 이사한 집 앞에도 다행히 작은 만화가게가 하나 있었다. 이 무렵에는 임창 허영만 이상무 외에 새로운 작가들의 작품이 쏟아져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70년대 말 그 만화가게에서 나는 신인 작가들의 만화에 빠져들었다. 그 중 몇가지는 일본 만화임을 나중에 알았지만, 내게 가장 기억이 남는 작품은 ‘우승컵’ ‘저 강은 알고 있다’였다. ‘우승컵’은 당시 만화에서는 보기 어려웠던 리얼리티가 강하게 살아 있었다. 그후 작가를 아무리 찾아봐도 알 수 없어 아쉬웠다.

하지만 내게 또다른 만화의 모습을 보여줬던 ‘저 강은 알고 있다’의 작가는 후속작을 계속 냈기 때문에 이름을 기억할 수 있었다. 그 작가는 바로 이현세였다.

79년 일본만화 ‘캔디 캔디’의 열풍이 전국을 휩쓸었지만 내 기억에 각인된 것은 이현세 이상무 허영만 선생님의 작품이었다. 그것은 내가 만화를 그릴까 말까 고민하던 시절에 만난 살아 있는 열정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황미나씨는?

△1961년 서울생 △1980년 ‘이오니아의 푸른 별’로 만화가로 데뷔 △82년 ‘아뉴스데이’ △1983년 ‘안녕! Mr. 블랙’ △1984년 ‘불새의 늪’ △1985년 ‘우리는 길 잃은 작은 새를 보았다’ △1990년 ‘슈퍼 트리오’ △1999년 ‘레드문’으로 ‘오늘의 우리만화’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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