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홍찬식/영화인의 삭발

  • 입력 1999년 6월 25일 19시 14분


스크린쿼터 축소에 반대하는 영화인들의 삭발이 이어지고 있다. ‘쉬리’를 제작한 강제규감독 등 8명의 영화인이 16일 한국영화 사수(死守)를 결의하며 처음 삭발한 데 이어 엊그제 중진인 임권택감독까지 가세해 모두 130여명이 머리를 깎았다. 때문에 요즘 충무로에 나가서 삭발한 사람을 만나면 무조건 영화인으로 생각하면 된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오고 있다. 스크린쿼터를 사수하겠다는 영화인들의 의지가 하늘을 찌를 듯하다.

▽이번 사태의 발단은 스크린쿼터 문제가 포함된 한미투자협정이다. 다음달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미국 방문에 앞서 정부가 한미투자협정을 빨리 타결지으려 하고 있으며 우리측은 스크린쿼터의 단계적 축소방안을 담은 대미협상안을 확정해 놓고 있다는 얘기가 영화인의 귀에 들어간 것이다. 그러나 해당부처인 외교통상부는 지금처럼 유지할 지, 축소를 할지 아직 결정된 것이 없다고 밝히고 있다. 한미투자협정도 협상 진전이 안돼 대통령 방미 이전에 타결될 수 없다는 설명이다.

▽반면 영화인들은 한미투자협정 체결이 임박했다는 얘기가 나온 것 자체가 스크린쿼터 축소를 의미하는 것이라며 극한투쟁 의지를 불사르고 있다. 게다가 얼마전까지 스크린쿼터의 현행 유지를 약속했던 문화관광부측은 영화인들의 추궁에 대해 부인도 긍정도 하지 않는 묘한 입장을 보이고 있어 영화인들이 애를 태우고 있다.

▽스크린쿼터를 유지해야 하는지, 아니면 축소하거나 폐지해야 하는지 논쟁은 일단 접어두더라도 이번 영화인 반발에 대한 정부의 애매모호한 태도는 떳떳하지 못하다는 생각이다. 정부 판단에 꼭 스크린쿼터를 축소해야 되겠다면 공론화해 정정당당하게 대응하는 것이 정도(正道)가 아닐까. 만약 우리 문화 보호와 육성을 위해 스크린쿼터가 필요하다는 결론이 내려진다면 협상과정에서 끝까지 관철해야 할 것이다.

〈홍찬식 논설위원〉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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