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MBC라디오「여성시대」PD 정찬형씨

  • 입력 1999년 5월 27일 19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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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AM라디오‘여성시대’(오전9시10분)의 정찬형 PD(41)는 “요즘 폭격맞은 기분”이라고 했다. 9년 이상 ‘설득의 카리스마’를 발휘해온 진행자 손숙씨가 24일 환경부장관으로 입각, 졸지에 프로를 떠났기 때문이다.

88년부터 방송된 ‘여성시대’는 청취자들이 보내온 편지와 가요로 구성되는 프로그램. 청취율이 40∼50%에 이르며 봉두완 변웅전 정한용씨 등 진행자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한 이들이 유독 많다. ‘여성시대’의 진행자석이 그만큼 대중적 인기를 보장한다는 뜻일까.

97년 가을부터 이 프로를 연출해온 정PD는 “방송을 정치적 야심에 이용하려 든다면 청취자에 대한 배신”이라고 말했다.

―손장관의 입각에 ‘여성시대’가 큰 몫을 했지 않나는 시각도 있는데.

“그렇지 않다. 대선때도 국민회의 측에서 찬조연설 요청이 많았다. 그때마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여성시대’는 일종의 문화권력이다, 수많은 청취자가 손씨의 한마디에 움직인다, 그 힘은 정치인에 비할 바가 못된다, 라고. 그래서 프로에 정치색을 철저히 배제하자고 했다. 손씨도 동의했다.”

―손씨가 방송중에 친DJ성향을 띠었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잖는가.

“선입견 때문이다. 이 프로는 삶이 생생히 묻어있는 편지로 감동과 웃음을 주고 나아가 사회시스템의 문제를 짚는다. 문제가 있는 이슈는 가리지 않고 비판했다. 지하철파업 때 ‘시민의 발 볼모론’ 등 일방적인 노조 비난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거나 더딘 개혁을 지적하는 등 현 정권에게 고언을 많이 해왔다.”

―프로에서 사회적 문제를 제기할 때 손씨는 어느정도의 역할을 했는가.

“자신이 공부를 많이 했다는 말을 자주 했다. 방송전 그날의 제작진과 사회적 의제에 대해 의견을 말하면서 스스로 자기를 규정해갔다. 또 그는 개혁성향이 짙다. 광주 망월동 5·18묘지를 80년대초에 다녀올 정도였다.”

‘여성시대’는 사실 엄청난 힘을 지녔다. 그 단적인 사례 하나. 올초 IMF한파가 기승을 부리던 때. 한 청취자가 이틀전 거제도 방파제 앞에서 찌그러진 자가용에 탄 일가족을 봤는데 불길해보인다는 편지를 보냈다.

그 사연이 방송되자마자 경찰관이 차적 조회를 해봤다, 보험사 직원이 보험조회를 해봤다고 연락해오는 등 1시간안에 수십통의 전화가 왔다. 현장에는 소방차 경찰차 주민들이 몰려들었고. 방송이 끝날 무렵 한 거제도 주민이 “별일 없더라”고 전화해와 ‘행복한 소동’으로 끝났지만 정말 컬트 영화같은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그 권력의 원천은 청취자다. 이처럼 몰리는 까닭이 뭘까.

“나의 말을 들어주는 상대에게 고민을 털어놓고 얻는 카타르시스, 그걸 들으며 나혼자 그런 고민을 하는게 아니구나 하고 느끼는 안도감, 그리고 모두함께 대안을 찾아가는 따뜻함이 프로에 배어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프로가 그만한 신뢰를 얻는데 진행자 손씨의 비중이 어느 정도였나.

“절대적이다. 그는 성대를 울리지 않고 가슴으로 말한다. 그러니 청취자들의 공감을 자아낼수 밖에.”

―사회적 이슈를 제기하면서도 주부를 비롯한 청취자들을 질리게 하지 않은 비결이 있다면.

“그 원칙이 ‘반발짝 앞서기’다. 하루 2백∼3백통의 편지와 1백여통의 전화로 사회를 조금 더 빨리 볼 수 있다. 문제도 생활속 일화를 통해 제기한다. 병역비리가 나오면 아들을 군에 보낸 어머니의 사연을, 세금문제에는 줄어든 월급을 걱정하는 중년 샐러리맨의 편지를 내보낸다. ‘답답하다’는 동병상련식의 공감보다 구체적 대안을 청취자들은 원한다.”

―그런 점에서 ‘여성시대’는 세상의 창이다. 정PD가 이 창을 통해 본 세상은 어떤가.

“평범한 사람들이 열심히 사는 모습과 그에 대한 반응을 보면 세상은 사랑할 만하다.”

―손씨 후임은.

“당분간 양희은 김미화 정은아 등 대타 체제로 진행한다. 열흘뒤쯤 윤곽이 나올 것이다. 별다른 선정 기준은 없다. 청취자들의 반응을 보아 결정할 생각이다.”

〈허 엽기자〉h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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