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숙씨 이럴땐?]「학력속인 결혼」 솔직히 고백하길

  • 입력 1999년 5월 16일 20시 04분


▼편지 ▼

저는 본의 아니게 남편에게 큰 거짓말을 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6년전으로 거슬러 갑니다. 중매쟁이의 소개로 선을 보고 결혼을 했습니다. 중매쟁이가 “온 식구가 대학을 졸업했다”고 거짓말을 하는 바람에 남편은 저까지 대졸 학력으로 오해를 하게 되었죠.

결혼을 앞두고 아버지를 원망하며 신세한탄을 많이 했습니다. 오빠와 남동생들은 모두 대학에 보내면서 언니와 저는 대학에 보내지 않았거든요. 양가에서 결혼날짜를 받고 나서 결혼 전날까지 ‘오늘은 이실직고해야지’라며 망설이기만 하다가 끝내 고백하지 못했지요.

결혼 후 짧은 학식이 탄로날까봐 무척 조심을 했습니다. 남편이 대학 앨범을 보자고 하면 얼버무리고, 무역부에 근무하던 남편에게 걸려온 외국인 전화에 식은 땀이 솟고….

배움의 갈증이 더해갔고 늦었지만 용기를 내 공부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던 중 지난해 주부학교에서 배움의 기회를 찾았습니다. 가족들에게는 요리와 컴퓨터를 배운다고 말하고 주부학교에 등록하고 고교과정의 수업을 받고 있습니다.

나이 들어 그것도 가족몰래 공부를 한다는 것이 무척 힘들었죠. 그런데 그만 문제가 생겼습니다. 남편이 명예퇴직 후 집에 있다보니 드러내놓고 공부할 수가 없습니다. 이제 와서 공부를 포기하기도 싫고 어찌하면 좋을까요.

(한 주부가)

▼답장 ▼

먹고 살기도 어려웠던 시절, 우리 부모님들은 자식들 가르치는 걸 부득이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특히 딸 자식들은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었죠.

또 설사 밥은 먹고 살더라도 ‘계집애가 배워서 뭘 할 것이냐’는 남존여비 사상 때문에 배우는 걸 포기할 수밖에 없는 여성들이 평생을 그 한으로 가슴아파 하는 걸 많이 봐 왔습니다. 특히 학벌을 속이고 결혼해 불안했을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픕니다. 왜 솔직하게 얘기하지 않았느냐고 나무랄 생각은 없습니다.

늦게라도 용기를 내서 공부 시작한 것에 큰 박수를 보내드립니다. 이제 편지 쓰신 그 용기로 남편에게도 솔직하게 말하고 그 불안과 아픔에서 벗어나세요.

아마 건전한 사고를 하는 남편이라면 오히려 아내의 등을 두드려 주면서 격려해 줄 것입니다. 누구보다 열심히 한 가정을 단단하게 꾸리면서 살아오셨고 그 공은 모든 걸 용서받고도 남을 것입니다. 용기 잃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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