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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형 열린마음 열린세상]알리의 ´하얀 눈물´

입력 2002-10-02 17:51업데이트 2009-09-17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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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리를 처음 만난 건 외과 병동에서다. 낮 동안은 조용히 지내다가도 밤이면 깁스를 풀고 집으로 가겠다고 생떼를 쓰는 통에 간호가 안 된다는 것이다. 자칫 수술한 다리를 못 쓰게 될지도 모르는데 그의 고집을 꺾을 수가 없다. 밥도 안 먹고 잠도 자지 않고 밤이면 초조한 나머지 거의 제 정신이 아닌 것 같다는 게 간호사의 보고다.

▼˝우리 사장님 너무 잘해줘요˝▼

깁스한 다리를 천장에 달아 맨 채 그는 조용히 누워 있다. 말도 안 통하는 환자들 틈에 끼여 그 큰 눈만 깜빡이고 있다. “알리, 힘들지? 아플 적엔 고향 생각도 더 날텐데….” 그의 손을 만지며 다가서는 나에게 와락 안길 듯이, 눈을 번쩍 뜬다. 그리곤 다음 순간, 그 큰 눈에 눈물이 비 오듯 하더니 드디어 엉엉 소리내어 울기 시작했다.

스물 한 살, 앳된 얼굴이다. 벌이를 위해 먼 이국 땅에 와서, 다리마저 다쳤으니 앞이 캄캄할 것이다.

아픈 건 물론이고 서럽고 외로운 것도 다음이다. 당장의 입원비 걱정, 거기다 자칫 불법 체류 사실이 드러나 쫓겨날 수도 있는 절박한 상황이다. 당장에라도 병원을 뛰쳐나갈 수밖에 없는 그 딱한 심경이 이해가 간다.

더욱 딱한 건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는 사실이다. 우선 치료비는 작업 중 공상(公傷)이니까 회사에서 물 것이라고 안심시켰다. “그래서 더 걱정입니다.” 겨우 진정된 눈에 또 눈물이 글썽거렸다. “그래서 걱정이라니?” 난 그 말뜻이 얼른 이해되지 않았다.

“요즈음 우리 사장님 돈이 없어요. 외국인 직원 월급은 나오지만 한국인 동료들은 그런 것 같지도 않아요.” 난 알리의 얼굴을 한참 내려다 봤다. 그의 표정은 진지했다. 처음엔 내 귀를 의심했다. 직원이, 더구나 외국인 근로자가 사장 돈 걱정을 하다니….

이제 난 그 사장의 인품이 궁금했다. 종업원을 어떻게 대했으면 이러한 인간애가 피어날 수 있을까. 그간 우리는 사용자가 외국인 근로자를 착취, 협박, 심지어 폭행까지 한다는 기사를 얼마나 많이 접해 왔던가. 그런 참에 알리의 이야기는 정말이지 내겐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우린 그날 이후 시간날 적마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알리는 지금 일하는 기와공장 기숙사를 ‘파키스탄 홈’으로 불렀다. 10여년 전 우연히 자기 선배들이 일하게 된 이래 지금 껏 파키스탄 사람들이 대를 잇고 있다는 것. 비록 외딴 곳, 흙일이 힘들긴 하지만 젊은 사장 내외의 인간적 대우에 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형제도 그렇게 따뜻하게 대해 줄 순 없다는 게 알리의 주장이다. 사장 내외도 나란히 살지만 안방까지 열려 있다. 이 곳을 다녀간 선배들이 보내 온 선물, 편지만 보아도 여기선 향수병에 걸릴 걱정이 없단다. 회사가 아무리 어려워도 외국인 근로자부터 걱정해 주는 젊은 사장 내외의 진심이 이들을 감동시키고 있는 것이다.

알리도 그 전에 일했던 가죽공장에서 꽤 힘이 들었던지 그냥 고개만 흔들었다. 그래 알리, 세상엔 어딜 가나 나쁜 사람도 있고 생각이 모자라는 사람도 있다. ‘파키스탄 홈’처럼 돌아가서도 제2의 고향같이 생각한다면 한국이란 나라를 얼마나 자랑스럽게, 고맙게 생각하겠어. 한국 PR맨이 되어 두 나라 사이에 인정가교를 이어주는 외교 사절이 될 수도 있을텐데…. 딱하게도 그걸 오히려 철저한 혐한, 반한 인사로 만들어 돌려보내다니! 월급도 떼먹고, 세상에 그게 어떤 돈인데. 오죽하면 이런 악질 회사를 감시 고발하는 비정부기구(NGO)가 생겨났을까.

▼공장기숙사엔 정이 흐르고▼

알리, 이번 아시아경기에 너희 나라 선수가 온 걸 보면서 문득 네 생각이 났다. 절룩거리며 퇴원하던 너의 뒷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이젠 다리는 완쾌되었겠지. 몸 조심해, 그리고 이젠 더 울지마. 누구에게나 서러운 과거는 있는 법이란다. 우리도 한때 서독 광부로 간 적이 있었지. 당시 우리 대통령이 그곳을 방문해 이들을 격려하는 자리에서 “미안하다”는 한마디를 하고 더 이상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하자 장내는 온통 눈물바다가 되었었지. 그 정경에 감동한 그 나라 총리가 거액의 차관을 제공해 한국의 오늘이 있게 한 밑거름이 되었어. 알리, 단 돈 1달러로 하루를 버텨 나갔던 미국 생활에도 우린 결코 서러워하진 않았단다.

알리, 힘내라. 아시아경기 응원도 해야지. 너희네는 하키가 세지. 어쩌면 결승에서 한국과 만날지도 몰라. 그래도 난 파키스탄을 응원할거야. 진심에서의 감사와 따뜻한 사랑을 담아, 그리고 언젠가는 찾아올 너의 그 영광의 날을 위해, 기도하는 마음으로 응원할거야.

이시형 사회정신건강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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