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기획]3일은 학교로, 7일은 회사로… 탄탄한 독일 만드는 밀알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6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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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도제교육 현장을 가다

1일 독일 파펜하우젠의 루프자동차 정비공장에서 도제 교육생인 클라우디오 슈로프 군(왼쪽)이 자동차 앞 유리 교체 작업을 하는 마이스터인 제바스티안 슈레글레 씨의 움직임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파펜하우젠=유덕영 기자 firedy@donga.com
1일 독일 파펜하우젠의 루프자동차 정비공장에서 도제 교육생인 클라우디오 슈로프 군(왼쪽)이 자동차 앞 유리 교체 작업을 하는 마이스터인 제바스티안 슈레글레 씨의 움직임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파펜하우젠=유덕영 기자 firedy@donga.com
1일 독일 바바리아 주(州) 파펜하우젠 소재 포르셰자동차 전문튜닝회사인 루프자동차 공장에서 만난 클라우디오 슈로프 군(19)은 선배이자 마이스터(숙련 기술자)인 제바스티안 슈레글레 씨(25)를 도와 자동차의 앞 유리 교체 작업을 하고 있었다. 한국으로 따지면 고등학생 신분이지만 슈로프 군은 엄연한 루프자동차 직원이다. 중학교를 졸업한 뒤 이 회사에 도제교육생으로 지원서를 내 합격했고, 직장과 학교를 오가며 3년 과정의 직업교육을 받고 있다. 슈로프 군은 “도제교육생으로 선발된 뒤 열흘 중 3일은 직업학교에서 공부하고, 7일은 여기에 나와 자동차 정비와 관련된 기술을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슈로프 군은 학생이기도 하지만 루프자동차의 직원이기 때문에 한 달에 710유로(약 93만 원)의 훈련수당을 받고 있다. 3년 과정을 마치면서 치르는 자격시험에 합격하면 루프자동차의 정식 직원이 되고, 지금보다 3배쯤 많은 월급을 받게 된다. 슈로프 군은 “대학에 가서 엔지니어가 될 수도 있지만 도제교육을 통해 어릴 때부터 관심이 많았던 자동차 정비를 하게 돼 나도 만족하고 부모님도 만족하고 있다”고 말했다.

“도제교육, 학생도 부모도 만족”

학교와 기업이 함께 학생을 육성하는 독일식 도제교육이 청소년에게는 조기에 취업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기업에는 맞춤형 인재를 양성할 수 있는 방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독일식 도제교육은 학생이 기업과 도제교육계약을 하고 학교에서는 이론을, 기업에서는 실제 업무를 배운 뒤 졸업 후 취업을 보장받는 제도다.

하이델베르크의 카를 보슈 고등학교에 다니는 엘리아스 쇼름 군(20)도 2년 전 메르세데스벤츠사의 도제교육생으로 채용돼 자동차 정비 업무를 배우면서 고등학교 공부도 같이 하고 있다. 내년 2월 졸업하면서 자격시험에 통과하면 바로 벤츠사의 정식 직원이 된다. 쇼름 군은 “일을 하다가 마이스터 자격증을 딸 수도 있고, 대학에도 갈 수 있다”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꼭 대학에 가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지금은 도제교육을 마치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과 공부 병행하는 ‘듀얼 시스템’

독일식 도제교육은 중학교를 졸업한 학생이 기업에 도제교육생으로 취업해 일을 배우면서 직업학교에서 정규 고교 교육과정을 마칠 수 있는 ‘듀얼 시스템’이 특징이다. 고교 과정에서도 일과 학업을 동시에 할 수 있는 것.

독일 전체 기업 중 약 20%가 도제교육을 통해 직원을 채용하고 있다. 중학교 과정을 마친 학생이 자신이 원하는 기업에 원서를 내면 기업이 시험과 면접 등의 선발 과정을 거쳐 도제훈련생을 선발한다.

직업훈련계약을 맺은 도제생은 평균 795유로(2014년 기준)의 훈련수당을 기업에서 받는다. 정규직의 약 3분의 1 수준이다. 평균적으로 일주일에 3.5일은 기업이 요구하는 기술을 배우고, 1.5일은 기업이 위탁한 직업학교에서 공부한다.

직업 훈련이 목적인 학교지만 기술 이론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독일어 수학 경제 사회 종교 등 일반 교과목도 함께 공부한다. 하이델베르크 카를 보슈 직업학교 슈텔프 슐라이터 교감은 “기술 교육 이외에도 사회인으로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역량을 기르기 위해 일반 교과목도 의무적으로 가르쳐야 한다”고 설명했다.

듀얼 시스템을 통해 일을 하면서 고등학교 과정을 마친 학생들은 한 단계 높은 수준의 자격인 마이스터 자격을 취득하기 위한 공부를 할 수 있고, 대학에도 진학이 가능하다. 금속 가공회사인 헤베를레 파인메카니크의 도제교육생으로 3년째 교육을 받고 있는 발렌틴 퀴블러 군(19)은 대학에 진학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퀴블러 군은 “금속을 다루는 것에 매력을 느껴 도제교육생이 됐는데, 교육을 계속 받다 보니 항공공학을 배우고 싶어졌다”며 “듀얼 시스템을 통해 공부할 수도 있지만 짧은 기간에 공부를 마치기 위해서는 대학에 가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보통 2년∼3년 6개월의 교육기간에 도제교육생들은 두 차례의 시험을 통해 기능공 수준의 기술을 갖췄는지 평가받는다. 기업들은 자격을 갖춘 도제교육생은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정규 직원으로 채용한다.

도제교육으로 배출된 기능공들은 독일 산업의 주축을 이루고 있다. 매년 50만 명 이상의 훈련생이 도제교육에 참여하는 등 독일 중등단계 학생의 55.7%(2014년 기준)가 듀얼 시스템을 통해 직업 교육을 받은 뒤 산업 현장으로 투입된다.

도제교육이 이뤄지는 직종도 다양하다. 도제교육생들은 사무직을 가장 선호하고 판매직, 운송수단 기술직, 영업직, 무역직, 의료분야 전문인력, 산업기계공 등도 인기 있는 분야다.

하지만 도제교육을 받는다고 해서 결과가 항상 좋은 것은 아니다. 계약한 기업이 문을 닫거나 직업훈련 지도자와의 갈등, 건강상의 문제 등으로 도제교육이 중간에 끝나기도 하고, 최종 시험에서 떨어져 자격 취득 없이 교육이 끝나기도 한다. 이런 경우가 4명 중 1명꼴에 달한다.

“도제교육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

독일 하이델베르크에 위치한 다국적 기업 에이비비의 트레이닝센터에서 2년 차 도제교육생들이 금속가공 실습을 하는 모습. 에이비비 제공
독일 하이델베르크에 위치한 다국적 기업 에이비비의 트레이닝센터에서 2년 차 도제교육생들이 금속가공 실습을 하는 모습. 에이비비 제공
전 세계적으로 14만 명의 직원을 둔 다국적 기업 에이비비(ABB·전력 및 자동화 기술 기업)는 독일에서만 1300여 명의 도제생을 교육하고 있다. 베를린과 하이델베르크 등 두 곳에 교육센터를 운영하면서 자사 도제교육생뿐만 아니라 시설 부족 등으로 자체 교육이 어려운 협력업체의 도제교육생도 함께 가르치고 있다.

이 회사가 기계와 전자의 융합 기술인 메카트로닉스 분야의 인력을 양성하는 데 필요한 기간은 3년 6개월. 이 기간에 도제교육생에게 지급하는 훈련수당은 한 달 1000유로이고, 여기에 처우개선비와 4대 보험, 교육에 소요되는 비용 등을 감안하면 메카트로닉스 분야에서 1명의 도제교육생을 육성하는 데 7만5000유로(약 9858만 원) 정도의 비용이 투입된다.

도제교육생을 육성하는 데 적지 않은 비용이 투입되지만 연방정부나 주정부의 지원은 전혀 없다. 훈련 기간이 끝난 뒤 도제교육생이 회사와 계약한다는 보장도 없다. 도제훈련계약에 따르면 도제교육생은 경쟁업체로 이직할 수 없지만 일을 하지 않거나 대학에 진학하는 것은 자유다.

그럼에도 독일의 기업들은 도제교육생을 육성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마르쿠스 브라우네르트 에이비비 트레이닝센터장은 “도제교육생을 몇 명 뽑을 것인지 계획하는 단계부터 최종적으로 인력이 배출되는 데까지 약 5년의 시간이 필요하고, 비용도 적잖이 투입돼 경영진의 고민이 많은 게 사실”이라며 “하지만 도제교육 기간은 회사에서 필요한 인력을 양성하는 과정이고 이때 회사에 대한 애착을 가질 수 있도록 교육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프랑크푸르트 상공회의소의 잔드라 자디기 씨는 “도제교육생을 선발해 교육하는 것을 사회적 책임이라고 여기는 기업이 많고 이것이 기업의 이미지 제고에도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독일에서는 직업에 대한 편견이 상대적으로 적은 점이 탄탄한 직업교육의 바탕이라고 보고 있다. 이영민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연구위원은 “독일의 학교에서는 학생에게 인문계 고교 진학 대신 직업교육을 받도록 해도 학부모가 이를 큰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문화와 전통이 있다”며 “직업 간 인식과 처우 등에서 큰 차이가 없고 직업학교를 졸업해도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 직업교육이 잘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파펜하우젠·프랑크푸르트·하이델베르크=유덕영 기자 firedy@donga.com
#독일 도제교육#자동차 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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