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GO매거진] '의약분업 체험기' 60분기다려 2분진료

  • 입력 2001년 4월 26일 18시 52분


서울 종로구에 직장이 있는 30대 회사원 나건강씨. 3월부터 불어닥친 황사 덕택에(?) 코와 목이 막히고 기침에 통증까지 왔다. 빠듯한 일과에 억지로 짬을내 뒤통수에 꽂히는 상사의 따가운 눈초리도 외면한채 회사에서 가까운 병원을 찾아 서둘러 들어갔다.

얼른 치료를 받고 직장으로 돌아가려던 나씨. 그러나 웬걸 평소에도 늘 이렇게 환자가 북적이는지 H병원 이비인후과는 복도까지 인산인해를 이룬다.

접수부터 꼬박 1시간이 지나서야 본인 차례가 돌아왔다.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들어간 진료실. 그러나 그는 2분도 채 되지 않아 진료실에서 나와야 했다.

무뚝뚝한 의사는 나씨에게 일상적인 몇마디만 물어볼 뿐이었다. 의사는 별말없이 영어로 처방전을 휘갈겨 쓴 다음 나가보라고 한다. 사흘간 약먹어보고 다시 오라는 것이 의사가 나씨에게 던진 주문의 전부.

처방전을 들고 외래 본인부담용 계산서를 확인한 후 그의 눈은 휘둥그레졌다. 회사 근처라 가까워서 달려온 이곳은 종합병원.

그가 부담해야할 초진료가 8400원이나 됐다.

주사 및 약값은 9490원. 합해서 1만7890원. 보험자부담액 4280원을 뺀 1만3610원이 그가 부담해야할 금액인 것이다.

2분도 채 안되는 진료를 받았을 뿐인데 1만원이 훌쩍 넘어버리다니….

돈도 돈이지만 더욱 기가막힌 것은 1999년 이래 다섯차례나 의료보험 수가가 올라 환자가 부담해야 할 본인부담금이 30%나 늘어났지만 진료서비스는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는 현실이다.

의약분업 이전이나 이후나 의사의 고압적이고 권위적인 태도도 여전했고 환자에 대해 그다지 성실함을 보여주지 않았다.

'의사들의 진료행위가 크게 개선된 것도 없는데 국민들더러 의료비만 더 내라고?' 나씨는 화가 불끈 치밀었다.

하지만 직장에 매인 몸이라 변변한 항의 한번 제대로 못하고 그는 약국으로 달려갔다. 그곳에서 사흘치 물약과 해열제, 주사약이 담긴 한아름의 약봉지를 받아 안고 회사로 돌아왔다.

사무실에 와서야 처방전을 차근차근 살펴보니 그가 낸 4800원의 약값속엔 처방의약품으로 소화제도 끼여있었다.

소화가 안된다거나 위가 약하다는 말은 하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처방약에는 소화제가 들어있었다. 이는 또 어찌된 일인가.

나씨는 어이가 없었다.

▼달랑 한장뿐인 처방전▼

사흘이 지나도 목의 통증은 가라앉지 않았다. 다시 H병원을 찾아갈까도 생각했지만 소화제까지 바가지를 쓴 마당에 그병원엔 두번 다시 출입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동네근처의 의원으로 갔다. 여기도 사람들이 북적거리긴 마찬가지.

회사출근을 1시간 가량 미루고 오전 9시에 찾아간 병원에는 대기자가 벌써 7~8명이나 되었다. 3~4분가량 진료를 받고 의사와 상담한 후 의료기구를 이용해 목안의 부은 부위까지 치료를 받았다.

도합 10여분. 지난번 H병원보다는 좀 나은 수준이었다. 본인부담진료비는 2200원. 그런데 처방전을 달랑 한장만 주는 것이다.

의료법 시행규칙 제15조 2항에 따르면 처방전은 반드시 2장을 발행하도록 돼있는데 말이다. 이번에는 발끈해서 곧바로 따졌다.

"아니 왜 처방전을 한장만 주는 거에요?"

"이 한장만으로도 약국에서 아무 탈 없이 이 약을 받을 수 있어요. 그리고 전문가가 아닌 이상 보셔도 잘 모를걸요?"

"그거야 제가 물어보면 되는 거요. 얼른 한장 더 주세요."

몇차례 실랑이 끝에 한장을 더 받아낸 나씨가 승리감에 도취해 당당하게 의원문을 나서려던 참이다. 그의 뒤통수에 대고 들려오는 목소리.

"그 약은 이 건물 1층 00약국이나 주변 00약국에 가야 있습니다."

그때 느꼈을 당혹감은 그뿐만이 아닐 것이다. '꼭 그 약국에 가야하나?' 속으로 못마땅한 생각이 끓어오른다.

그렇지 않아도 의약분업 이후 전에 없던 약국이 하나둘 더 생긴터다. 그 의원에서 가라는 같은 건물 1층에 있는 약국도 의약분업 이후 새로 생긴 경우.

나씨는 바로 회사에 출근해야 했기에 병원에서 일러준 약국에 가지 않고 곧장 사무실로 향했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들른 직장 근처 약국. 간단한 목통증 치료약이건만 이곳에는 그 약들이 없다는 것이다.

약값은 1000원. '이정도면 비싼 약도 아니라 쉽게 구할 수 있는 약인 것 같은데 이렇게 간단한 조제약도 없다니.'

이해가 쉽게 되지 않는다. '왜 그병원 근처에 있는 약국에는 즐비한 약들이 멀리 오면 없는 것일까' 의구심의 가중은 하늘로 계속 솟구친다.

▼의료보험의 사각지대▼

며칠째 목통증이 계속되는 가운데 엎친데 덮친 격으로 예전부터 자주 아프던 오른쪽 사랑니 덕분에 치과에 가야 했다.

사랑니와 그 주변 잇몸이 부어서 찾아간 L치과. 의사는 아픈 곳은 보질 않고 다른 곳부터 둘러본다. 그러더니 던진말.

"치아 전체를 스케일링(치석제거)한번 하셔야겠네요."

"네? 제가 보기엔 깨끗한 것 같은데…"

"그리고 어디보자.음, 치아 윗아래가 안맞아 불편하셨죠? 한번 갈아서 맞춰야해요. 아 오른쪽 눈, 어깨, 허리 등이 전체적으로 아프거나 빨리 피곤해지지 않아요?"

"예,듣고보니 그런 것도 같은데요."

"이가 서로 맞질 않아서 그래요. 아랫니를 몇군데 갈고 깎아서 맞춰야 돼요. 그 다음에는 보조기구를 씌우고 몇달 지나면 전체적으로 틀이 맞춰지지요."

"아니 저는 사랑니가 아파서 왔는데요?"

"아 그건 나중에 보면 되고요. 이게 더 급한 거에요."

"그건 얼마나 되고 어느 정도나 끼워야 하는데요?"

"보조기구는 플라스틱으로 하면 한 200만원 정도, 흔히 보철기라고 하는 철로 된 걸 씌우면 300만원 정도고요. 몇달이 될지는 그때 가봐야 알것 같은데요."

"네?"

혹떼러 와서 혹붙이고 간다더니 의사는 의료보험혜택이 적용되지 않는 스케일링이나 치아를 갈고 보조기 씌우는 얘기만 30분이나 늘어놓는다.

나중에는 이런 친절한 치아상담은 다른 곳에서는 이정도 치료비내고 받을 수 없다는 생색까지 낸다. 그 장황한 얘기를 듣다보니 나씨는 자기가 어디가 아파서 여기에 왔는지 헷갈리기조차 하는 것이었다.

치과와 성형외과는 의료보험 적용이 안되는 것을 의사는 모르는 것일까? 고가의 의료기구를 쓰도록 요구하는 모습이 마치 '닳고 닳은 영업사원'같은 느낌마저 준다.

집요하게 치아교정을 권하는 의사를 말리고(?) 사랑니 제거수술날짜와 처방전을 받았다. 수술전까지 한 종류의 약을 먹고 수술직전 주사를 맞으라는 것과 나머지 약은 수술후 먹으라는 처방전을 받았다.

수술까지는 일주일이나 남아 나씨는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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