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GO매거진]평화네트워크/미국의 무기구매 압력

입력 2001-02-22 10:22수정 2009-09-21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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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이 지난 2월 7일 이정빈 외교통상부 장관과의 회담에서 4조3000억원대 규모의 한국의 차기 전투기 도입 사업(F-X)으로 미국의 전투기를 구입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미 국무장관이 공식적으로(!) 무기 로비스트를 자처하고 나선 것도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지만, 대북정책을 놓고 김대중 정부와 부시 행정부의 의견 조율이 첨예한 관심사로 부각되고 있는 가운데 이루어진 미국 측의 요청이라는 점에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자칫 미국의 대북정책이 강경한 방향으로 흐르는 것을 막기 위해 10조원이 넘는 엄청난 돈을 미국의 군산복합체에 안겨줘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사업은 차기전투기 도입 사업뿐만이 아니다.

2조1000억원 규모의 차세대 공격용헬기 도입 사업(AH-X), 2조4000억원대의 차기 대공미사일(SAM-X) 도입 사업 등 대규모 전력증강사업의 무기 기종이 올해 안에 결정될 예정이다.

여기에 조기경보기, 무인정찰기, 이지스급 구축함 도입 등을 포함할 경우 관련 예산만 10조원이 훌쩍 넘는다.

이러한 한국 정부의 전력증강사업 계획이 공개되면서 최근 서울에는 미국과 유럽, 러시아 등의 무기상들과 로비스트들이 몰려들고 있는 실정이다.

작년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의 평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는 것과는 역설적으로 서울에서는 사상 유례 없는 무기상들의 로비전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전력증강사업 전면 재검토해야▼

현재 계획 중인 전력증강사업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근본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다.

첫째 과연 현재 도입 예정인 무기 체계들이 한국이 직면한 위협, 지형의 특성, 상호운용체계, 비용 대 효과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적합한가의 문제이다.

특히 공격용 헬기와 차기 대공미사일 도입 사업에 대해서는 군 내부에서조차 타당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실정이다.

둘째, 이러한 전력증강사업과 남북한 군사적 신뢰구축 및 군축 계획이 양립 가능한가의 문제이다. 현재 한반도 상황에서 최선의 안보확립 방안은 남북한의 군사적 대결 종식 및 공동 안보로의 이행이다.

특히 올해 남북한간에 군사·안보 분야에서 실질적인 진전이 없을 경우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는 안팎으로 중대한 고비를 맞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남한이 전력증강사업은 사업대로 계속 추진하면서 북한에게는 군사적 신뢰조치와 일방적인 군축을 요구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 전략인지 의문스럽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을 주적으로 상정한 한미군사동맹체제의 유지·강화, 군사적 신뢰구축이 미흡한 상황에서 추진되고 있는 남한의 전력증강사업, 부시 행정부의 힘의 외교 선언과 최근 이라크 폭격 등을 목격하고 있는 북한의 의구심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군사적 대립 구조 청산은 근본적인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극심한 경제위기와 취약한 사회안전망 속에서 갈수록 위태로워지고 있는 국민들의 '인간안보'를 외면한 전력증강사업이 과연 바람직한 '국가안보'인가를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최근 한국이 겪고 있는 위기는 북한의 남침 위협보다는 IMF로 상징되는 경제위기와 이로 인한 국민들의 총체적 삶의 위기 의식에서 비롯되어 왔다.

이러한 점을 외면하고 여전히 무기 도입에 압도적인 예산을 투입하는 것은 김대중 정부 스스로 강조하는 '튼튼한 안보'와 거리가 멀다고 할 수 있다.

▼DJ, 미국의 무기 구매 요구에 단호히 대처해야▼

김대중 정부는 전력무기증강 사업을 전면 재검토하는 것과 동시에 부시 행정부의 부당한 무기 구매 압력에 단호히 대처해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3월 7일로 예정된 김대중 대통령의 워싱턴 방문은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

군산복합체로부터 막대한 지원을 받아온 부시 행정부가 군수 산업체의 '숨통 틔워주기'의 하나로 한국에 무기 구매 압력을 직간접적으로 행사할 것이라는 점은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다.

문제는 현재 한국의 상황이 이러한 압력에 대단히 취약하다는 점에 있다.

과거 정권 때는 미국이 주한미군 철수나 안보 공약을 철회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일종의 '보험금' 형태로 막대한 무기 구매를 해왔다.

사실상 미국이 한국의 무기 시장을 독점하면서, 한국은 '시장가'와는 거리가 먼 '독점가격'을 지불해온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그대로 안은 채, 미국의 정권 교체는 '부시 행정부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이탈 방지'라는 또 다른 보험금을 요구하는 상황을 낳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부시 행정부의 전향적인 대북정책을 이끌어내기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미국으로부터의 무기 구매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부시 행정부의 대북포용정책 지지를 기대하기는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또 한가지 부시 행정부가 보험금 형태로 요구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 한국의 전역미사일방어체제(TMD) 참가이다.

부시 대통령, 럼스펠드 국방장관, 파월 국무장관 등이 유럽과 중동, 그리고 한반도를 잇는 전지구적 미사일 방어망을 추진하겠다고 밝히면서, "이 문제를 관련 동맹국들과 협의해 나가겠다"고 밝힌 것은 이러한 전망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미 한국이 도입할 예정인 패트리어트 개량형인 PAC-3, 이지스급 구축함, 조기경보기 등은 탄도미사일 방어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TMD 체계의 일부이다.

부시 행정부는 이런 무기들과의 상호운용성과 한미연합방위체제를 강조하면서 한국의 참가를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될 경우 한국은 일본과 비슷한 형태로, TMD의 연구개발에 참가하고, 관련 예산을 분담하며, 무기 체계의 '완결성'을 이유로 대규모의 무기를 미국으로부터 도입해야 할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부시 행정부로부터 안보 공약을 재확인하고, 대북포용정책에 대한 지지를 이끌어내야 하는 김대중 대통령으로서는 큰 고민거리에 직면한 것이다.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미국의 요구를 수용할 경우, 단기적으로는 미국과의 마찰을 줄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이러한 미국의 부당한 요구에 계속 끌려 다닐 경우 한반도의 무기 시장화와 미국의 제국주의적인 대한반도 영향력의 유지라는 '미국식 늪'에서 헤어나올 수 없다는 점 또한 인식해야 할 것이다.

글/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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