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운동기획/5]작업장 감시…정치적으로 편향된 기술

  • 입력 2000년 6월 19일 10시 03분


미래학자들의 확신에 찬 예견과는 달리 정보통신기술이 실제 생산력 향상에 기여하는 바에 대해서는 논란이 분분하다. '생산력 패러독스'는 여기서 나온 말이다. 반면 정보통신기술의 감시와 통제 기능에 대해서는 뚜렷한 사례들이 제시되고 있는데, '작업장 감시'가 대표적이다.

기술은 흔히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작업장에 도입되는 기술은 대부분 '노/사 양측에 도움이 되는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생산력 향상'을 명분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어떠한 기술도 중립적인 것은 없으며 특히 작업장에 도입되는 기술은 '정치적으로' 편향되어 있다는 사실을 많은 연구들이 보여주고 있다.

데이비드 노블의 연구에 의하면, 사용자측은 공장에 자동화 기계를 도입할 때 기술적으로 합리적인 녹음재생 방식보다 노동자 통제가 손쉬운 수치제어 방식을 선택했다. "녹음재생 시스템에서는 급송, 속도, 작업량, 산출고에 대한 통제권이 기계공에게 주어져 있는 반면, 수치제어 시스템에서는 통제권이 경영진으로 이동"할 수 있었던 것이다. 즉 작업장에 도입되는 기술은 생산력 향상이라는 명분보다는 기술에 대한 권력을 쥐고 있는 이들의 더 큰 이해 관계에 따라 결정된다.

사실 노동력 자체가 주요한 생산력의 하나이지만 인간의 능력은 기계의 능력에 비해 매우 잠재적이며 제한적이다. 따라서 한정된 시간 안에 잠재적인 노동력에서 최대한의 생산력을 끌어내기 위해서 사용자측은 노동 과정에 대한 전면적인 감시와 통제를 정당화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이미 맑스가 통찰한 바대로이다.

자본주의가 등장한 이래 작업장은 보다 완벽한 통제를 위한 사용자와 노동자들 사이의 전쟁터가 되어 왔다. 노동자들을 한 지붕 아래 모으고 노동 시간을 정착시키는 것이 최대의 과제였던 초기 자본주의 시대의 통제가 비교적 인격적이며 육체적 '처벌'로 이루어져 왔다면, 19세기말과 20세기 - 즉 포드주의와 테일러주의 시대에 들어서면서 들어서면서 관료제적 통제가 오늘날 기업의 이미지를 대표하게 되었다. 발전된 회계 기법과 위계적이며 정기적인 보고서, 그리고 '과학적 관리'를 특징으로 하는 관료제는 전문적 관리자층을 등장시켰고 노동 과정에 대하여 보다 전면적이며 직접적인 통제를 가능하게 했다. 스웰과 윌킨슨은 자유롭게 맺어지는 노동계약이 자본주의적 전유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관료적 감시는 그 정당성을 강화한다고 주장한다. 베버의 말처럼, 관료들(관리자, 계획자, 사무원 등)은 자신의 행동(지휘, 감시, 규율)을 주어진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가장 합리적인 수단으로 정당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관료제가 확장되면서 생산기구가 점점 거대하고 복잡해져감에 따라, 조직을 유지·관리하기 위한 비용이 증가할 뿐더러 통제에도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특히 테일러주의적 생산 방식에 대한 노동자들의 반감과 저항은 '의도하지 않았던 효과'를 계속 불러일으켰고 축적의 위기에 봉착한 자본 측을 당황시켰다.

테일러주의의 과잉을 극복하기 위해 최근에는 '유기적' 조직과 스스로 '책임자율성'을 갖는 조직원에 의한 통제 방식이 등장했다. 번즈와 스톨커에 따르면 '유기적' 조직은 공식성이 낮고 수평적인 정보흐름이 많으며 위계상의 지위보다는 전문성에 근거한 의사결정을 한다는 점에서 '기계적' 관료제와 많이 대비된다. 혹자는 이것을 '유연적 전문화'라 부르며 포스트포디즘의 징후로서 제시한다.

그러나 통제의 본질적인 면에서 변화한 점이 거의 없으며 오히려 통제의 질적인 측면에서는 더욱 강화되었다는 점을 많은 이들이 지적하고 있다. 노동자 개개인의 '자유 재량'을 늘인 듯이 보이는 '책임자율'적 통제 방식은 오히려 소위 '팀작업' 등으로 '동료에 의한 감시'를 조장하면서 보다 엄격하게 생산력 할당을 통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과거에 비해 시간·장소가 극도로 유연화된 조직 구조에서 성과급 등의 심리적·이데올로기적 경쟁 기제를 끊임없이 제시하면서 과거에는 동료였던 노동자들을 서로 경쟁시킨다는 점에서 '책임자율'적 통제는 가장 비인간적이며 전면적인 통제라 할 만하다. 이 통제 방식의 또다른 비인간적 면모는 그 기계적 특성에서 드러난다. 관리자와의 인격적 접촉을 최소화하는 대신 첨단기술을 도입하여 한 사람 한 사람의 노동 과정을 매우 세밀하게 통제하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서 '작업장 감시 기계' 논란이 불거진다.

1998년 3월 현대자동차 전주 공장은 바코드 칩이 내장된 ICCARD 신분증을 발급하기 시작했다. 사측에서는 ICCARD 시스템을 도입하면 수많은 노동자들의 신원 확인이 신속하게 이루어지면서 "비효율성을 과감히 제거하고 공장을 혁신하고 … 복잡한 업무처리 과정을 단순화하고 업무를 신속히 처리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 ICCARD가 단순히 신분 증명의 용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문 및 각 반의 샵에 이미 설치가 완료된 자동화 시스템과 연계되어 노동자의 위치와 작업 성과를 중앙에서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RF 액티브 뱃지'의 형태로 운용될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짐에 따라 노동자들은 크게 반발하였다. 노동조합에서는 이 시스템이 작업에 대한 노동자들의 통제권과 여유 조절을 극도로 회사에 귀속시키고, 결국 노조 활동의 위축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크게 우려를 표명하였다.

국제노동기구(ILO)에서는 실제로 미국의 작업장에 도입된 CCTV는 노동조합 조직화에 위 협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미국의 모기업에서 노조 조직화가 시도되자, 사용자는 공장내부에 비디오 감시장비를 설치하고 그것의 초점을 모든 개인의 작업장소와 작업자에게 맞춰놓았다. 모니터는 아무도 볼 수 없었고 오직 관리자만이 사무실에서 볼 수 있었다. 사용자는 모니터링이 안전을 목적으로 하며, 작업과정의 위험요소 및 잠재적 위험가능요소를 파악해 냄으로써 노동자의 보상보험요율을 낮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노조 조직화의 열기가 높아지는 동안, 작업공간을 떠나서 휴게실로 간 두 명의 노동자에게 허락없이 작업공간을 떠나지 말라는 주의처분이 내려졌다. 이는 곧 노조조직화를 위한 활동을 위축시키는 '효과'를 낳았다. 판매부서에 있는 노동자 100명 중 89명이 조합의 대표권을 인정하기 위한 선거에 동의하는 위임장에는 서명을 했으나 실제 투표결과는 대표권을 인정받을 수 있는 의결정족수에 12표가 모자라 실패하고 말았다. 당시의 노동자들은 회사측이 비디오 촬영을 통해 자신들의 활동을 파악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졌다고 회고했다."

ICCARD, CCTV 이외에도 전자정보적 감시의 수단과 방법은 매우 다양하다. 다스(DAS) 시스템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첨단 생산력 통제 시스템의 경우에는 노동자 개개인의 생산량 도달 뿐 아니라 몇시 몇분 몇초에 얼마 동안 자리를 비웠는지, 화장실에 갔는지, 담배를 피우러 갔는지를 다 체크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실제로 작업 과정과는 관련이 없는 화장실이나 휴게실에 설치된 CCTV는 그 자체로 끊임없는 논란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에도 일반화되어 있는 전자우편(E-mail) 감시, 인터넷 사이트 차단, 전화모니터링에서부터 미국의 경우에 확산 일로에 있는 거짓말 탐지기나 유전자 검사 등 갈수록 첨단화되어 가고 있는 '감시 기술'에 의해 작업장이 점점 더 비인간화되어 가고 있는 것이 오늘날 우리의 현실이다.

그러나 작업장 감시는 쉽게 사회적으로 문제시되지 않는다. 이는 첫째,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직접적인 위협 요소로 여겨지지 않기 때문이다. 위에서 언급한 현대 자동차 사례의 경우에도 기층 노동자들의 노동조합 간부들의 판단이 달라 논란이 더욱 크게 불거졌다. 둘째, 실질적으로 작업장 감시가 문제가 되더라도 언제나 문제의 기계들이 작업장에 도입된 이후에 사후적으로 불거지는 것이 큰 문제이다. 대부분의 경우 노동자들은 언제나 기계가 도입된 이후에야 그 기능을 알 수 있기 때문이고, 따라서 기계 자체의 철회보다는 애매한 '합의'로 결론이 나게 마련이다. 실제로 시내버스마다 설치된 CCTV는 노골적으로 '운수 노동자 삥땅 감시'라는 명분으로 도입되었음에도 노/사 양측은 '양심 보너스'로 이 문제를 합의함에 따라 감시의 문제를 양심의 문제로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이 기술들이 도입될 때에는 결코 '감시'가 아닌 '생산성 향상', '도난 방지' 등의 명목을 달고 있다. 그것은 현대 기술이 점점 복잡해지고 시스템화하면서 '감시'만을 목적으로 하는 기술을 분리하게 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첫째, 보이지 않는 감시가 더욱 위험하다. 이 점은 푸코가 '전자 판옵티콘'에 대한 유명한 통찰에서 보여준 바 있다. 판옵티콘, 혹은 일망감시는 감시 받는 대상에게는 불을 환하게 쪼여 투명하게 만들고 감시 하는 자의 위치는 조명의 뒤편에 두어 불투명하게 만드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점점 더 투명해 지는 개인, 점점 더 불투명해지는 권력'으로 요약되기도 하는 이런 감시 모형도는 소위 정보화 사회의 가장 큰 특징이기도 하며, 가장 큰 문제는 감시를 받고 있는 대상이 감시의 시선을 언제나 의식하면서 규율 권력을 내면화하게 되는 데 있다. 즉, 실제로 감시당하고 있는지 아닌지에 상관 없이 저기 달려져 있는, 혹은 숨겨져 있는 CCTV로 누군가 나를 감시하고 있음을 언제나 의식하고 행동을 조절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책임 자율성'의 요체이다.

그런 의미에서 기술이 도입된 이후에 이것이 감시냐 양심의 문제냐를 따지는 것은 매우 협소한 문제제기일 수 있으며 사실 판세를 크게 바꾸지 못한다. 그보다는 기술이 도입되기 이전에 특정 기술의 도입에 대하여 노동자들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작업장에 도입되는 기술에 대한 '정보 공개'가 이루어져야 한다. 사실 이 부분은 '역감시'(anti-surveillance) 논자들이 감시의 문제를 '프라이버시권' 이상의 문제라고 주장하는 이유이다. '프라이버시권', 즉 알리지 않을 권리가 실제로 관철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개인 정보가 처해질 상황에 대한 정보 공개, 즉 알 권리가 충족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전자주민카드나 버스 CCTV 장착을 둘러싸고 최근 우리 사회에 불어닥친 감시 논쟁은, 기술의 '잘못된 활용'이 문제가 아니라 기술이 포함하고 있는 모종의 '정치적 의도'가 문제라는 기술학자들의 주장을 떠올리게 한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기술은 전적으로 '정치적 발명품'이다. 그런 의미에서 작업장 감시의 문제는 한 생산 현장의 문제일 뿐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의 감시와 권력 문제의 핵심을 포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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