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질서 新문명]한스 요르크 잔트퀼러

  • 입력 2002년 1월 25일 18시 08분


《 지식민주주의와 다원주의를 주장하는 유럽의 대표적인 진보적 철학자이며 인권 및 평화 이론가인 독일 브레멘대 한스 요르크 잔트퀼러 교수와 그의 제자인 윤형식 박사(한국문학번역원)의 이메일인터뷰를 마련해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이 시대의 가장 심각한 갈등으로 등장한 서구와 이슬람의 문제에 관한 견해를 들었다.》

-선생께서는 1960∼70년대에 마르크스주의적 입장을 취하다가 지식민주주의와 다원주의를 지향하는 방향으로 철학적 입장을 전환하셨습니다. 1980년대 말 공산권 붕괴처럼 작년의 '9·11테러'라는 역사적 사건 역시 철학사에서 다시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요?

"'9·11 사태와 함께 세계는 달라졌다', '10년 전 냉전이 종식된 이후 이제 우리 문명세계에 대한 테러와 함께, 이 21세기 최초의 전쟁과 함께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다'라고 많은 이들이 말합니다. 과연 모든 것이 달라졌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세계는 여전히 옛날 그대로입니다. 새로운 세계질서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과거에 서방세계는 '타자'들에게 귀기울이지 않았고, 오늘날에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타자'들에게 우리의 메시지를 보내고, 그들이 여기에 복종하지 않으면 폭탄을 투하하는 것입니다. 문제의 핵심은 '타자'들을 이해하지 않는다는 데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북국'(미국과 유럽 등 북반구의 선진국들)의 지배적인 대다수가 자기 자신을 이해할 마음도 없고 능력도 없다는 데 있습니다."

-9·11테러는 자기 정체성을 지키려는 이슬람의 저항이라고 풀이하기도 합니다. 미국의 공격 또한 자신들이 스스로 규정한 자신의 정체성을 지켜내려는 시도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이들 사이에 서로의 정체성을 인정하며 공존하는 다원주의가 실현되지 못하는 근본적 이유는 무엇입니까?

"유럽과 북미의 정체성이 얼마나 문제덩어리였는가는 이제 명백히 드러났습니다. 그것은 고유한 정체성이 아니라, 이해되지 않은 '타자'에 대한-지금은 이슬람 세계에 대한- 대립에서 나온 정체성입니다. 유럽과 북미는 수백 년 전부터 정치와 기술에서 경계를 확장하면서 '이방인'을 정복하고 배제하려는 사고방식(mentality)을 가져 왔습니다. '진보'와 '미래'라는 개념은 바로 이 사고방식의 불안정성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미래가 있다는 생각 속에는 자아를 팽창시키고 '타자'를 복속시킨다는 생각이 담겨 있습니다. 사고방식은 단순한 이데올로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정치와 경제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며, 폭력을 허용합니다. 이런 사고방식의 실천이 바로 '세계화'이며, 이런 사고방식의 이론이 '보편주의'입니다. 이런 사고방식에는 '악의 종말'과 '진리의 전파'라는 두 가지 위험한 환상이 개입돼 있습니다. 천국을 참고 기다릴 수 없기 때문에 내일이 아니라 바로 오늘-폭력을 동원해서라도-천국을 실현해야 하며,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진리를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에게 '가져다' 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폭력을 동원해서라도 말입니다."

-선생께서는 독일에서 20세기에 최대의 갈등이었던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갈등이 첨예하게 드러나는 현장을 지켜보셨습니다. 그렇다면 현재의 이슬람과 서구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낡은 세계질서에는 다음 세 가지 통찰이 자리할 곳이 없습니다. 그것은 정체성이란 언제 어디서나 서로가 서로에게 타자임을 의미한다는 통찰, 그리고 이 통찰로부터 문화적 차이를 초월한 공존이 성립된다는 통찰, 그리고 이 점을 파악한 자만이 모든 이들의 자유와 안전을 위해서 폭력의 강화보다는 축소를 지향할 것이라는 통찰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런 통찰을 하지 못하고 있는 유럽과 북미는 본래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 연대 및 인권의 이념들이 '자리하고' 있는 곳이었습니다. '타자'의 배제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북국'은 자신의 역사 속에서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북국'은 테러에 직면하자 과거에도 자주 그랬듯이 이 가르침을 망각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갖는다면 피상적 지식과 편견을 제거하고 자주적으로 사유할 수 있을 것이며, 타자에게 귀기울이고 그들을 배려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선생께서는 지식민주주의와 인권, 다원주의 등을 강조하십니다. 그런데 '테러와의 전쟁'을 강행하고 있는 미국은 그런 면에서 어느 나라보다 앞서 있는 나라가 아닙니까?

"사실상 9월11일의 사건으로 인해 '이제 우리는 다른 세상에 산다'고 주장하게 됐다는 것은 현재 세계에 도덕의 마비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줍니다. 9월11일의 뉴욕에서 희생된 사람들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부정의한 세계질서 때문에 매일 굶어죽어 가고 있지 않습니까? 뉴욕의 희생자에 대한 애도는 물론 솔직한 마음에서 나온 것이지만, 그 바탕에 깔린 생각은 미심쩍은 것입니다. 그것은 헤게모니를 가진 반쪽의 세계에만 집착한 애도입니다.

'자기'와 '타자'의 대립에 뿌리박고 있는 도덕은 부정의에 대한 저항능력이 없습니다. 이 도덕은 국제법상 배척된 전쟁의 복귀를 허용하고, 테러에 대해 전쟁으로 응답하기 위해 테러를 전쟁이라고 선포할 때에 침묵합니다. 유엔 헌장 제7장에 다른 국가의 침공에 대한 자국의 방어권이 명백히 규정되어 있는데도 말입니다. 이 도덕은 법을 모르며, 반인도주의적 범죄에 대한 법적 제재수단이 존재한다는 것을 외면하는 도덕입니다. 벌써 1945년 이후 열린 뉘른베르크와 도교의 전범재판이 망각된 듯이 보입니다."

-선생께서는 다원주의를 지지하시지만, 다원주의의 위험은 극단적 상대주의나 회의주의에 빠질 우려가 크다는 데 있습니다. 다원주의라고 해서 자신의 행위를 합리화하는 모든 주장을 다 긍정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이 세계에 대한 유일한 진리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이것은 단지 철학과 과학의 역사를 통해서만 입증된 통찰이 아닙니다. 이것은 실제, 즉 사회와 국가 그리고 국제관계에서도 타당합니다. 그러나 점차 모든 문화에 파고들어 가는 이 의식상의 진보로부터 방향설정과 질서유지 및 조정의 문제들이 나오게 됩니다. 개인적 테러와 전쟁을 통한 국가적 테러의 정당화까지도 포함한 개인적, 집단적 행동규범은 선과 정의 및 합목적적 행위에 대한 견해를 달리하는 상이한 세계관과 사유태도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이런 차이들은 그 자체로는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서로의 차이를 상대주의적인 차이로 인정하지 않고 자기 중심적인 절대적 기준으로 삼을 위험은 상존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원주의와 상대주의를 폐기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로 척도를 제시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법입니다. 오늘날 법은 기본권과 인권이라는 형식으로 상대주의에 한계를 긋습니다. 법은 모두가 살 수 있고, 모두가 자유로울 수 있기 위해서 스스로에게 한계를 부여한 자유의 표현입니다. 테러리스트는 물론 정당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법적 수단 대신에 군사적 폭력에 호소하고, 국가 내부적으로는 지나친 보안법률을 통해 시민권을 약화시키는 자 역시 공범자입니다. 그런 사람은 타자를 적으로 만듦으로써 스스로를 적으로 만듭니다. 자신을 보다 더 긍정적으로 보이도록 만들기 위해서, 그만큼 더 타자를 열등한 존재로 보이도록 만드는 적개심 속에서 오히려 테러는 승리를 거두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회들이 공존하기 위한 기본 덕목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우리는 서로 다른 다양한 세계들의 세계, 변화하고 동요하는 세계 속에 살고 있습니다. 다양한 욕구와 이해관계, 의미와 문화들이 공존하는 세계 속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단 하나의 유일한 세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테러 및 이에 대한 군사적 대응이라는 단순한 대응은 구 세계의 쌍생아입니다. 현재 세계화되고 있는 것은 그릇된 양극단적 사고입니다. 테러든 그에 대항하는 반(反)테러든 서로 타자성과 배타성을 세계화하고, '친구'와 '적'이라는 도식에 따라 세계를 양분합니다. 이런 토대 위에서 세계화되는 것은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으로 '좋은 삶'에 대한 권리가 아니라, 테러일 뿐입니다.

기술적 경제적 정치적 행위의 다양성 속에서 모든 이들이 기아와 테러로부터 보호되어야 하며, 모든 사람이 인권을 침해하는 모든 것에 대한 거부권을 가지고 있다는 법의 이념과 실천이 관철될 때에야 비로소 정의롭고 공정한 새로운 세계질서가 눈앞에 열릴 것입니다."

◆ 한스 요르크 잔트퀼러는 누구인가

1940년 독일 프라이부르크에서 출생한 한스 요르크 잔트퀼러(Hans J rg Sandk hler) 브레멘 대학교 교수는 유럽의 대표적인 진보 철학자 중 한 사람이다.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대, 프랑스 파리 소르본대 그리고 독일 뮌스터대에서 철학, 법학, 독문학을 공부한 그는 전후 독일 철학계의 재건에 핵심적 역할을 한 저명한 보수주의 철학자 요아힘 리터의 제자이다. 하지만 그는 68학생운동으로 상징되는 60년대 말∼70년대 초 유럽의 지적 풍토 속에서 스승의 학풍을 따르지 않고 급진적 마르크스주의 철학을 표방하게 된다.

이 당시 발표한 그의 저서 '실천과 역사의식'은 흔히 관념론적 경향을 갖는 해석학에 대해 유물론적 재구성을 시도한 역작으로 평가받았고, 젊은 그에게 급진 좌파 철학자로서의 명성을 안겨 줬다. 이후 그는 일단의 좌파 학자집단을 이끌면서 '변증법 연구총서'를 간행하고, 진보적 철학학술지 '변증법'의 편집자로 활동하게 된다. 그가 80년대 우리나라 철학계에 소위 '정통' 마르크스주의 철학자로 알려지게 된 것도 이러한 그의 저술과 활동 때문이다.

그러나 1960∼70년대 마르크스주의를 수용했던 그의 비판정신은 1980년대에 들어서 이데올로기로서의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비판적 성찰로 이어지게 된다. 그는 인간의 인식을 현실의 반영으로 보는 유물론적 반영론을 비판하고, 프랑스 철학자 바슐라르의 과학론과 캇시러의 상징철학, 그리고 후기분석철학의 실용주의적 과학철학의 영향하에 인식주체인 인간이 세계의 구성자라는 칸트적 시각을 재정립한다. 이런 인식론적 시각은 실천철학 면에서 다원주의와 정의와 민주주의의 이론적 결합을 통한 '지식민주주의' 이론으로 나타난다.

그는 현대 사회에 사실상 존재하는 다원주의에 주목한다. 이론적으로 다원주의를 옹호하든 비판하든 간에 가치관과 세계관, 개인 각자의 삶의 계획 등 모든 측면에서 실재하는 다원주의의 인정은 불가피할 뿐만이 아니라, 인권을 바탕으로 한 정의와 연대에 기초한 민주주의의 주체적 실현을 위한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실 사회주의권의 몰락은 근본적으로 이 실재하는 다원주의를 권력국가가 부인했던 데서 비롯된 것이다.

그는 실재하는 다원주의의 조건하에서 민주주의는 오직 법원칙에 의해 제도화된 형태의 연대로서만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이런 연대를 가능하게 하는 토대인 법적 제도의 핵심은 기본권과 인권이다. 그는 비록 완전히 실현되고 있지는 않더라도 현재 적어도 법적 형태로 존재하는 '실정화된 인권'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민주주의의 실천 근거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대 지식기반사회에서 그가 특히 주목하는 것은 '앎의 인권'이다. 과학, 기술 지식을 위시한 지식의 급속한 팽창은 인류 전체의 지식을 확대시키지만, 이는 개인 주체에게 오히려 지식의 결핍으로 나타나고, 주체적 자기결정의 역량을 마비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이른바 '지식의 위기'이다. 이 지식의 위기는 특히 빈자에게 위협적이다. 빈자는 물질적으로만이 아니라 지식에서도 빈곤하기 때문이다.

그가 제시하는 이 위기의 해결책은 앎의 인권에 기초한 지식민주주의다. 다원주의는 지식에도 적용된다. 세계인식과 자기인식의 내용의 다양성에 대한 존중은 지식민주주의의 기본조건이다. 지식획득에서의 기회의 평등은 오늘날 정의의 핵심요소다. 지식의 위기의 한 현상인 전문가정치는 민주주의를 위협한다. 따라서 지식민주주의는 지식의 공유를 요구한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기 때문에 자신의 지식으로 다른 이들을 도와야 한다는 연대의 원칙이 요청된다. 이 연대를 바탕으로 자율적 개인의 지식에 기초한 주체적 자기결정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과거 현실사회주의 국가권력이 '지식독점'을 토대로 작동했던 점을 상기해 본다면 그가 지식민주주의 이론을 하나의 새로운 진보적 전망으로 제시하게 된 동기가 이해된다. 그의 이론이 각별하게 평가받는 이유도 그것이 현실 사회주의의 붕괴로 집약돼 나타난 문제에 대한 치열한 고민에서 나왔기 때문일 것이다.

윤형식(한국문학번역원 사업1팀장·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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