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서 살아보니]브랜든 카/잇단 스캔들은 한국 통과의례

  • 입력 2002년 10월 15일 18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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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에서 부정부패 스캔들이 자주 보도된다. 뇌물을 받은 정치인, 정치인 가족의 비리, 기업의 돈을 횡령한 사장, 정부관리의 비리 등 스캔들이 끝없어 보인다.

이런 보도가 나오면 한국인들은 한국의 미래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필자는 스캔들이 일어난다는 것 자체가 매우 긍정적이고, 한국사회가 겪는 통과의례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보자. 과거 송무 사건의 상대방 변호사가 부장 판사나 고위직 검사 출신이면 공정한 재판이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는 말을 한국 변호사들로부터 들은 적이 있다. 판사들이 전관(前官)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린다는 것이다. 하지만 몇 년 전 법조계의 전관예우 관행을 폭로한 뉴스가 있었다. 문제삼지 않고 수용하기만 하던 그릇된 관행에서 벗어나 누군가가 그것은 옳지 않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과거의 비리와 부정을 잘못으로 인식한다는 것 자체가 국민의 의식이 그만큼 변화했다는 증거다. 의식의 변화는 진보와 발전의 자극이 될 수 있다. 스캔들은 그래서 많을수록 좋은 것이 아닐까.

지금 63세가 되신 필자의 아버지는 20대 초반을 뉴욕주에서 보내셨다. 당시에는 항상 20달러짜리 지폐를 면허증과 함께 갖고 다녀야 운전할 수 있었다고 한다. 경찰에게 교통법규 위반으로 걸렸을 때 돈을 쥐어주면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지만, 그렇지 않으면 곤욕을 치렀다는 것이다. 그로부터 불과 한 세대가 흐른 지금의 필자에게는 놀랍기만 한 이야기였다. 나는 경찰관에게 뇌물을 준다는 것을 상상해본 적도 없었다. 한 세대 동안 미국은 크게 달라졌고, 국민의식 또한 변화했다. 미국도 과거에는 부패한 사회였다. 경찰관들은 뇌물을 받았고 정치인들은 국민에게 거짓말을 했다. 하지만 국민과 언론들은 부정부패가 발견될 때마다 개선의 노력을 멈추지 않고 제도를 수정, 보완해왔다. 그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최근 미국에 기업 회계 비리사건이 발생했다. 그로 인해 많은 투자자들이 어마어마한 손실을 입었다. 하지만 미국인들은 분노하고 원망하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 즉각 다시는 그런 비리가 발생하지 못하도록 의회에서 법을 만들고 규정을 고쳤다. 미국이 선진국이 된 것은 스캔들을 통해 허점을 깨닫고 그때마다 제도를 수정 보완해왔기 때문이다. 비록 완벽하지 못하더라도 그에 가까운 제도를 만들고, 그 제도와 규정을 철저히 적용하고 운영한다.

사회는 이렇게 진보한다. 그러므로 스캔들이 계속 일어나고 국민이 여기에 분노한다는 것은 그러한 잘못을 고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증거다. 시민과 언론이 감시의 눈길을 거두지 않고 앞으로 부정부패와 비리가 재발하지 않도록 제도를 갖추고 정비하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면 한국 사회는 진보할 것이다. 그리고 30년 후 한국의 다음 세대들은 지금의 부정과 비리를 까마득히 먼 옛날이야기로 기억하게 될 것이다.

▽브랜든 카는 누구?▽

1969년 미국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에서 태어나 메릴랜드주립대에서 행정학을 전공한 뒤 워싱턴주립대 로스쿨을 마쳤다. 10년 전 한국에 들어와 현재 서울 오로라법률사무소에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아내, 두 딸과 함께 살고 있다.

브랜든 카 오로라법률사무소 미국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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