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기업, 이것이 달랐다](주)한화

동아일보 입력 2009-12-05 03:00수정 2009-12-0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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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화약공장서 시작… 그룹성공 ‘다연발탄’ 쏘아올려
폭약 공급 인프라 건설 공신
항공우주사업까지 큰 걸음
해외 자원개발회사로 도약
김종희 창업주의 갑작스러운 타계로 29세 나이에 그룹 경영권을 이어받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김 회장은 부친의 ‘사업보국’ 경영이념 아래 그룹의 모태가 된 화약산업 외에도 건설, 금융, 레저 등 다양한 산업에 진출하며 재계 순위 13위(민영화된 공기업 포함)로 그룹 규모를 키웠다. 사진 제공 한화그룹
“몇십 배가 남는다고 해도 난 설탕이나 페인트를 들여올 달러가 있으면 단 얼마라도 화약을 더 들여올 겁니다. 나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하는 송충이이며, 화약장이가 어떻게 설탕을 들여옵니까? 난 갈잎이 아무리 맛있어도 솔잎이나 먹고 살 거요.”(현암기념관 소개 글에서 발췌)

고(故) 김종희 한화그룹 창업주가 얼마나 다이너마이트 국산화에 집착했는지 가늠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6·25전쟁 이후 폐허가 된 1950년대는 생활에 쓰일 만한 것은 무엇이든지 수입해 팔면 큰돈을 벌 수 있는 때였다. 당장 돈 될 일이 없는 화약을 굳이 위험 부담까지 안고 들여오겠다는 김 창업주를 주위에서 말렸다.

하지만 그의 신념은 확고했다. 남들이 선뜻 하려 하지 않지만 화약산업은 나라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는 믿음이 굳건했다. ‘사업보국(事業報國·기업 경영으로 사회적 부를 이뤄 나간다)’이라는 경영이념 아래 한국의 재건에 큰 몫을 담당한 ㈜한화는 이렇게 출발했다.

○ 화약으로 시작, 방위·항공우주사업까지 진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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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화약산업의 선두주자인 ㈜한화는 매출 28조 원에 계열사 44개를 거느린 지금의 한화그룹을 키운 모(母)기업이다. 1952년 6·25전쟁이 끝나갈 무렵 서른 살의 젊은 사업가 김종희 창업주는 조선화약공판 입찰에 뛰어들어 인천 화약공장을 낙찰 받았다. 그는 폐허가 되다시피 한 인천공장 입구에 ‘한국화약주식회사’란 간판을 내걸었다. 한국화약이 이후 ‘한화’라는 약칭으로 더 자주 불리자 창업주의 아들 김승연 회장은 1993년 아예 사명을 한화로 바꿨다.

한화는 1957년 다이너마이트 원료로 쓰이는 니트로글리세린 생산에 성공하며 국내 처음으로, 아시아 지역에서는 일본 다음으로 다이너마이트 국산화 시대를 열었다. 다이너마이트 국산화에 성공한 인천공장은 경부고속도로 등 국가 기간산업에 필요한 화약을 공급하며 2006년 가동을 중단할 때까지 폭약 124만 t, 뇌관 11억 개, 도화선 7억7000만 m를 생산했다.

국내 화약산업의 막을 연 인천공장 자리에는 지난달 화약박물관 겸 한화기념관이 들어섰다. 이 화약박물관에는 다른 박물관에서는 볼 수 없는 공간이 있다. 바로 기도실이다. 화약을 만들다 보니 김종희 창업주가 공장 안에 기도실을 만들어 직원들의 안전을 기원했다는 것이다. 이런 창업주의 유지를 받들기 위해 박물관에도 기도실을 마련했다고 한다.

화약이라고 하면 전쟁이나 무기 같은 단어가 머리에 떠오르지만 자동차용 에어백 핵심 부품과 항공기 부품 등에 다양하게 쓰인다. 한화는 수십 년간 산업용 화약에서 축적한 기술을 바탕으로 방위사업에 진출해 자주국방에 일익을 담당해 왔다. 또 1990년 한국형 전투기 사업에 참여하면서 항공우주사업에도 뛰어들었다. 올해 9월에는 충남 아산시에 국내 항공우주 분야 최고의 장비와 정밀제조 기술력을 갖춘 아산공장을 세우며 해외시장 진출을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 글로벌 전진기지에 포진한 무역전사들

한화에는 화약사업 부문과 함께 무역사업 부문이 다른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한화 무역사업 부문은 세계 주요 나라에 8개 법인과 14개 지사를 두고 있다. 산업용 원자재에서 생활용품, 식량자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품목을 취급한다.

2000년대 들어서는 미래 신성장동력 발굴 차원에서 자원개발 사업을 추진하고있다. 2006년 카타르 액화천연가스(LNG) 사업을 시작으로 미국 멕시코 만 가스탐사 사업, 미국 텍사스 원유생산 광구 인수 등에 나서며 국내 대표적인 자원개발 전문회사로 입지를 굳혔다.

특히 텍사스 원유생산 광구 인수에 이어 카자흐스탄 등지에서도 자원개발 사업에 속도를 낼 계획이다. 하루 1만 배럴 이상의 생산량을 확보해 자원개발 전문회사로서의 위상을 다지겠다는 것이다. 탄소배출권 사업이나 매립지 발전사업 등 환경사업 역량도 강화해 나가고 있다.

한화는 그룹의 모기업답게 지속적인 변화와 혁신 운동에도 적극적이다. 전국에 퍼져 있는 사업장을 돌며 경영진이 직접 임직원에게 회사의 비전과 경영 성과를 설명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동시에 ‘CEO 레터’를 통해 경영진과 임직원 사이의 틈을 좁히는 ‘열린 경영’을 펼치고 있다. 올 7월에는 ‘한화-협력회사 상생협의회’를 출범시켜 한화와 협력회사 간 동반 성장의 기틀을 마련했다.

정효진 기자 wiseweb@donga.com

㈜한화의 밑거름이 된 인천공장의 1950년대 당시 모습(왼쪽). 2006년 가동을 중단한 인천공장 자리에는 지금 화약박물관 겸 한화기념관이 들어서 있다. 6·25전쟁을 거치면서 폐허가 되다시피 한 이 공장에서 김종희 한화그룹 창업주(오른쪽)는 다이너마이트 국산화에 성공하면서 국내 화약산업의 첫 장을 열었다. 사진 제공 한화그룹
::㈜한화 약사
―1952. 10 한국화약㈜ 설립

―1955. 10 조선유지공판 인천공장 인수

―1957. 11 국내 첫 니트로글리세린 시험생산 성공

―1976. 06 기업 공개

―1978. 08 여수공장 준공

―1991. 10 보은공장 준공

―1993. 03 ㈜한화로 상호 변경

―1995. 01 골든벨상사 흡수합병

―2006. 10 인천공장 설비 보은공장으로 이전 완료 및 준공식

―2007. 01 종합연구소 준공

―2008. 12 무역의 날 금탑산업훈장 및 20억 달러 탑 수상

―2009. 09 아산공장 준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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