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盧정부 반면교사 10년]<9>갈등의 골 깊어진 노사관계

  • 입력 2008년 1월 10일 02시 59분


코멘트
“악수 좀 하시죠”현대자동차 노사와 중재단이 1998년 8월 24일 구조조정안에 합의한 뒤 악수를 하고 있다. 왼쪽이 당시 노무현 국민회의 중재단 대표. 동아일보 자료 사진
“악수 좀 하시죠”
현대자동차 노사와 중재단이 1998년 8월 24일 구조조정안에 합의한 뒤 악수를 하고 있다. 왼쪽이 당시 노무현 국민회의 중재단 대표. 동아일보 자료 사진
원칙 잃어버린 ‘勞편향’… 비정규직 늪에 빠져

《지난해 7월 9일 오후 6시 정부과천청사 노동부 장관실. 이상수 노동부 장관이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과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비정규직보호법을 놓고 갈등을 빚던 이랜드 노사 문제의 해법을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민주노총의 면담 요구를 이 장관이 받아들이는 형식이었다. 대표적 노동단체인 민주노총 위원장이 한 달 전 노무현 대통령과 면담한 데 이어 장관을 만났다는 사실만으로도 노무현 정부 들어 높아진 노동계의 위상을 확인하기에 충분했다. 이날 대화에서 양측은 뚜렷한 해법을 찾지 못한 채 견해차만 확인했지만 재계는 충격을 받았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노조의 파업에 대해 법과 원칙대로 대처해야 할 정부가 파업 당사자와 협상에 나선 일은 있을 수 없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노동계는 노동계대로 불만이었다. “노동계와 만나는 모양만 취할 뿐 사태 해결에 적극성을 보이지 않았다”는 주장이었다.》

○ 사용자 괴롭힌 친노동 정부

김대중 정부 초기인 1998년 8월.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서 36일째 계속된 파업이 국민회의 중재단의 중재로 일단락됐다. 겉으로는 노사 합의였지만 사실은 사측의 일방적 양보였다.

당시 현대차는 외환위기 이후 가동률이 40% 수준에 머물러 1만여 명 넘는 인력이 휴무를 하고 있었다.

경영상 이유로 6700여 명을 구조조정하려던 사측은 중재단의 요구에 따라 정리해고 대상을 270명으로 줄이기로 했다.

협상을 지켜본 전문가들은 새정치국민회의 노무현 부총재를 비롯한 정치인들이 당시 일방적으로 노조 편을 들었다고 꼬집었다. 중재단장이던 노 대통령은 지금도 현대차 파업 중재를 자신의 경력에 주요 업적으로 소개한다.

‘대통령과 정부가 노동자 편’이라는 인식은 노무현 정부 들어 노사 갈등의 골을 오히려 깊게 만들었다. 법과 원칙보다는 사측을 밀어붙이면 된다는 인식을 노동계에 심어 준 결과였다.

지난해 7월 비정규직보호법을 시행하면서 정부는 각각 3000여 명과 5000여 명의 비정규직을 집무급제 정규직으로 전환한 우리은행과 신세계의 예를 들며 홍보에 열을 올렸다.

노동부는 무기 계약직 또는 직무급제 정규직이라는 정확한 표현 대신 ‘정규직 전환’이라는 용어를 강조해 노동계의 기대감만 잔뜩 부풀렸다.

○ 노동계 불만은 여전

최재황 한국경영자총협회 정책본부장은 “원칙을 무시한 친(親)노동정책이 후진적 노사관계를 더욱 악화시키고 기업 활동을 위축시켰다”고 말했다.

노동계의 평가는 사뭇 다르다. 우문숙 민주노총 대변인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겉으로만 좌파를 외쳤을 뿐, 철저하게 사용자 편에 서서 노동자들을 탄압했다”고 말했다.

사측에 양보를 요구하고 장관이 불법 파업을 벌이는 노조위원장을 만나는 등 두 정부는 친노동정책을 펴는 듯했지만 실제로는 노동자의 희생을 강요했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외환위기 직후 출범한 김대중 정부가 국제통화기금(IMF)의 요구에 따라 기업 간 빅딜과 대대적인 기업 구조조정에 나서면서 많은 노동자가 직장을 잃었다.

실질임금도 크게 감소했다. 노동자 1인당 임금총액은 1997년 135만 원에서 2001년 153만 원으로 5년간 13.2% 상승했지만 물가 상승을 감안하면 오히려 1.9% 감소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에 따라 계약직과 비정규직으로 내몰린 노동자의 생활은 실제로 더 팍팍해졌다.

통계청의 경제활동부가조사에 따르면 2001년 8월 현재 계약직 등 비정규직 노동자의 월평균 임금은 89만 원으로 정규직 169만 원의 절반 수준(약 53%)에 지나지 않았다.

김영삼 정부 시절 불법 파업 등으로 구속된 노동자는 632명. 이 숫자는 김대중 정부에서 878명, 노무현 정부에서 1037명으로 늘었다. 두 정부에서 탄압이 더 심해졌다고 노동계가 반발하는 근거다.

○ 갈등 남긴 비정규직 문제

김대중 정부 마지막 해인 2002년 기준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는 380만 명이었으나 지난해에는 546만 명으로 늘었다.

노무현 정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비정규직보호법을 만들면서 무기 계약직으로의 전환 시점을 2년으로 정했다.

경영에 부담을 느낀 일부 회사는 법 시행 전에 비정규직을 대거 해고했고, 이에 맞서 노조가 파업에 돌입하는 등 오히려 불씨가 남아 있던 노사 갈등에 기름을 부은 셈.

이랜드 노조는 지난해 7월 이후 지금까지도 서울 마포구 상암동 홈에버 매장에서 시위를 계속하는 중이다.

지난해 10월 11일에는 이상수 노동부 장관이 비정규직 문제를 논의하려고 서울 중구 서소문동 올리브타워를 방문했다가 기륭전자와 코스콤 등의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출구를 봉쇄하는 바람에 2시간 가까이 고립됐다.

이병훈(사회학) 중앙대 교수는 “지난 10년간 노사 갈등은 증폭되고 노동시장에서 양질의 일자리가 줄어들었다”며 “상황이 악화된 노동자들이 ‘생계형 보수층’을 형성했고 이들의 표가 정권 교체에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나성엽 기자 cpu@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