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세논-크립톤 판명되면 핵실험 확실

  • 입력 2006년 10월 16일 03시 00분


코멘트
최근 동해 상공에서 방사능 물질을 확인한 미국은 어떤 방법으로 방사능 물질을 채집해 북한의 핵실험 징후를 확인했을까. 미국의 방사능 물질 확인에는 WC-135라는 특수정찰기가 큰 구실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크세논과 크립톤이 핵심물질=핵실험 징후와 규모를 파악할 때는 지진파를, 핵실험의 성공 여부와 시기를 판단할 때는 대기 중 방사능 물질의 농도 변화를 측정한다.

핵실험 때는 원자가 인공적으로 깨지면서 크세논(Xe-135)과 크립톤(Kr-85), 세슘(Cs-137) 등의 방사능 물질이 방출된다. 이들 물질은 자연에서는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가장 가벼워 멀리까지 날아가는 크세논과 폭발 후 최대 100년까지 공기 중에 남는 크립톤은 핵실험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핵심 물질.

핵실험 장소 상공에서 공기를 채집해 영하 50도 이하로 온도를 낮춘 뒤 흡착력이 강한 특수 필터(탄소 필터)에 통과시키면 산소나 질소 등 공기를 구성하는 주요 성분은 빠져나가고 무거운 크세논과 크립톤만 달라붙는다.

크세논과 크립톤의 비율을 측정하면 핵실험 여부는 물론 농축우라늄 폭탄인지, 플루토늄 폭탄인지까지 구별할 수 있다. 플루토늄으로 핵실험을 하면 농축우라늄으로 한 실험보다 크세논의 비율이 훨씬 높게 나타난다.

크세논은 약 9시간, 크립톤은 약 11년이 지나면 질량이 절반으로 줄어들고 일부는 다른 물질로 변한다. 현재의 질량만 알면 정확히 언제 핵실험을 했는지 예측이 가능하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14일 한 핵 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핵실험을 위해 파놓은 수평 터널의 끝부분에서 다시 수직으로 파 ‘ㄱ’자 모양의 터널을 만들면 방사능 물질이 유출될 가능성이 줄어든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크세논과 크립톤은 아무리 철저히 은폐해도 핵실험 직후 반드시 나오기 마련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견해다. 다만 폭발력이 너무 작은 데다 가스가 서풍을 타고 확산됐기 때문에 쉽게 측정하기 어려웠으리라는 것.

국내 학계의 한 원자력 전문가는 “미국이 측정에 시간이 걸린 이유도 남아 있는 방사성 물질의 농도가 워낙 희박해 많은 양의 공기를 모아야 했기 때문일 것”으로 추측했다. 검출 장치를 탑재한 미국의 특수정찰기는 바람의 방향을 따라 날면서 공기를 모아 방사능 물질을 포착했을 가능성이 높다.

▽WC-135기=미국은 9일 북한의 핵실험 발표 직후 미 네브래스카 주의 한 공군기지에 있던 WC-135기를 일본 오키나와 가데나 공군기지로 급파했다. 이후 WC-135기는 매일 북한의 동해 상공을 정찰 비행하며 핵실험 후 발생하는 방사능 물질을 추적해 왔다.

‘불멸의 불사조(Constant Phoenix)’라는 별칭을 갖고 있는 WC-135기는 1965년 미 공군이 공중급유기를 개조해 대기 관측용 정찰기로 개발한 것이다.

WC-135기는 냉전시대부터 옛 소련 상공을 비롯해 세계 곳곳을 무대로 핵실험 탐지 임무를 수행해 왔다. 1986년 옛 소련의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폭발사고 이후 방사능 잔해의 진행 방향과 피해 범위를 추적하는 임무를 수행하기도 했다.

또 2003년 WC-135기가 북한 영변 핵시설 상공에서 방사능 물질인 크립톤을 감지해 북한이 무기급 플루토늄을 추출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윤상호 기자 ysh1005@donga.com

박근태 동아사이언스 기자 kunta@donga.com

임소형 동아사이언스 기자 sohyung@donga.com


클릭하면 큰 이미지를 볼 수 있습니다.

(▲위의 이미지 클릭후 새창으로 뜨는 이미지에 마우스를 올려보세요. 우측하단에 나타나는 를 클릭하시면 크게볼 수 있습니다.)

▼ “위장실험은 아닌듯한데…” ▼

미국의 방사능 물질 탐지로 북한 핵실험이 사실일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는 북한이 재래식 폭탄으로 ‘위장 핵실험’을 하지는 않았음이 확인된 것. 그렇다면 이번 핵실험의 규모는 어느 정도이며 북한의 핵무기 제조기술은 어느 수준일까.

북한은 9일 핵실험 20여 분 전에 중국에 4kt(킬로톤·1kt은 TNT 1000t의 폭발력) 규모의 핵실험이라고 통보했다고 알려졌다.

반면 당일 한국지질과학연구원의 지진파 측정에 따른 북한 핵실험의 규모는 최대 0.8kt이었다. 목표인 4kt의 20%에도 못 미치는 소규모 폭발인 셈이다.

전문가들은 실패한 핵실험이라기보다는 북한이 핵무기 소형화 기술을 습득했거나 플루토늄으로 추정되는 핵물질을 적게 사용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전성훈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이 초보적인 핵무기 기술을 실험했다기보다 더 높은 수준의 정교한 핵무기 폭발을 시도하다 핵분열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미국이 탐지한 방사능 물질의 정확한 분석에는 2, 3일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방사능 물질을 분석한다고 해서 핵실험 규모가 정확히 나오는 것은 아니다. 결국 전문가들은 정확한 핵실험의 규모는 핵실험 장소에 대한 정밀조사 없이는 파악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또 정정 발표 ▼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지진연구센터는 15일 주변 국가의 측정치 등을 종합해 북한에서 발생한 인공지진의 진앙을 수정 발표했다.

이번에 3차로 분석된 진앙은 북위 41.275도, 동경 129.095도로 13일 발표한 2차 수정치(북위 41.267도, 동경 129.179도)에서 서쪽으로 7km, 북쪽으로 1km가량 떨어진 곳이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종전부터 핵실험 장소로 예측돼 온 함북 길주군 만탑산 인근이다. 연구센터는 3차 수정안은 국내 측정소 4곳과 인접 국가 5곳 등 국내외 9곳의 측정치를 종합 분석했다고 밝혔다.

대전=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