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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4월 20일 19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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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씨는 “익숙한 방송일이어서 아나운서 제의를 반가운 마음으로 수락했다”며 “북녘 동포에게는 ‘바깥 세상’을 알리고, 탈북자에게는 향수(鄕愁)를 달래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첫 방송 전날인 19일 두 사람은 서울 동대문구의 북한연구소 한 귀퉁이에 마련된 방송실에서 연습에 한창이었다.
정씨는 마이크 앞에서 북한식 말투를 한껏 살려서 “노동신문이 체제의 허수아비인 주제에 남조선의 대통령 탄핵을 두고 이랬니 저랬니 하고 훈시하는 것은 삶은 소대가리가 웃다가 꾸러미(되새김질에 쓰이는 위장)가 터질 노릇입네다”라고 말했다. 이는 말도 안 되는 일을 가리키는 북한식 표현.
북한에서 선전차의 방송원으로 노씨가 하던 일은 출근시간인 오전 8시를 전후해 큰길에서 확성기로 “하루 일과를 충실히 하자”는 내용의 방송을 하는 것이었다. 2001년 4월 한국에 정착한 노씨는 자신이 “고등학교 때부터 방송에 ‘끼’가 있었고, 목청이나 배의 호흡도 좋은 편”이라고 말했다.
반면 정씨는 한국에서 탈북자 단체인 백두한라회 총무 일을 맡다가 ‘숨겨진 방송재능’을 인정받아 아나운서로 발탁됐다. 한국에서 3년간 생활한 정씨는 북한식 말투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의 ‘말 솜씨’를 자랑했다.
그는 “북한식으로 박력 있고 우렁찬 목소리로 사람들을 감동시키면 됐지만, 한국식으로 부드럽게 하려니 좀 어색하다”고 말했다.
자유북한방송은 매일 밤 8시부터 한 시간 동안 생방송으로 진행되며, 다른 시간대엔 이를 재방송한다.
김승련기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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