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해보니]열린우리 우상호

  • 입력 2004년 7월 25일 18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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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제기자
김경제기자
《17대 국회에 첫발을 내디딘 187명의 초선 의원들이 첫 번째 맞은 개원국회와 임시국회를 마쳤다. 하지만 자신이 그렸던 국회의원상과 현실의 괴리 앞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초선 의원이 많다. 이들이 자평하는 의정활동 한 달 보름간의 ‘대차대조표’를 들어 본다.》

20일 오후 1시, 국회의원회관 440호. 열린우리당 우상호(禹相虎) 의원은 서류철이 어지럽게 널려있는 식탁 겸용 탁자 위에서 비빔밥 한 그릇을 게 눈 감추듯 뚝딱 해치웠다. “국회의원이 제일 편하다던데 왜 이리 바쁜지 모르겠어요. 12시40분에 당정회의 마치고 부지런히 달려와 점심 끼니를 때웠습니다.”

담배 한 개비를 피워 문 우 의원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후배들이 찾아왔습니다. 나더러 ‘실망했다’고 하더군요. ‘배신자’라는 말이 비수처럼 가슴에 꽂히더군요.”

이라크 파병반대결의안 명단에 서명했다가 철회한 뒤 그는 한동안 고초를 겪었다. 우 의원은 파병문제를 자신의 ‘아킬레스건’에 비유하기도 했다. “파병반대는 가장 편하고 쉬운 길이지요. 정체성에도 맞고 소신도 그렇고…. 그러나 나라의 운명, 북핵 문제를 생각하면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1987년 연세대 총학생회장,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부의장 등을 지낸 우 의원은 ‘386세대’의 대표주자다. 하지만 국회의원을 시작한 지 한 달 보름 동안 그는 ‘현실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려야만 했다.

“정책 결정을 하다보면 여러 가지 복잡한 배경과 이유들에 부닥칩니다. 갈 길은 먼데 이를 무시하기도 어려워요. 과거에는 가치관이 판단의 기준이었지만 지금은 균형 감각과 실행 가능성이 더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운동권 출신이지만 그는 현실과 이상의 균형추를 놓지 않기 위해 고심하고 있는 듯했다. 그는 “때로 거칠게 문제제기를 하는 의원들을 보면서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스타일의 변화가 문제의식의 약화로 가는 것은 아닌지, 야생마의 야성이 거세되는 것은 아닌지, 수은중독처럼 서서히 죽어가는 것은 아닌지 솔직히 흔들리기도 합니다”라고 고뇌를 털어놓기도 했다.

의정 활동 한 달여의 소감을 묻자 그는 “총론적 담론에 강합니다. 비판도 잘합니다. 하지만 미시적 정책사안에 대해 구체적인 준비가 아직 안 돼 있습니다. 한마디로 ‘창조적 정책대안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절감합니다”라고 고백했다.

우 의원은 “무엇이 재선에 유리한가가 아니라 무엇이 국가의 미래에 도움이 되느냐는 미래지향적 가치관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운동권 후배들의 비판 등 앞에 놓인 험로(險路)에 대해서도 “각오하고 있다”고 잘라 말했다.

윤영찬기자 yyc11@donga.com

▼우상호 의원은…▼

시인을 꿈꾸던 문학도. 1987년 연세대 총학생회장으로 6월 민주항쟁을 주도했다. 89년 대학졸업 뒤 10년간 재야에 투신했다가 98년 정치권에 입문했다. 현 열린우리당 원내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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