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점검 遷都논란]<1>허술했던 검증과정

  • 입력 2004년 6월 13일 18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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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행정수도 이전 추진이 본격화되면서 타당성 여부를 둘러싼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이전 대상에 입법부와 사법부까지 포함됨으로써 단순한 행정수도 이전이 아니라 ‘천도(遷都)’임이 점차 드러나자 찬반 논란이 정치권을 넘어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면서 국론분열의 조짐마저 나타나고 있다. 수도 이전에 따른 사회 경제적 측면의 기대효과와 예상되는 문제점을 짚어보고 대안을 제시해 본다.》

정부의 행정수도 이전이 정책적 타당성에 대한 면밀한 검증 없이 정치 논리에 의해 추진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김안제(金安濟) 신행정수도이전추진위원장이 9일 “현재 계획상 신행정수도 이전은 사실상 수도 이전이며 국회와 사법부가 모두 옮기면 그것은 천도라고 볼 수 있다”고 말한 것이 논란의 계기가 됐다.

▽천도 논란의 본격화 배경=한나라당은 “정부가 당초 약속과 달리 ‘사실상 천도’를 추진하려 하고 있다”며 그동안의 행정수도 이전론 동조 입장에서 발을 빼는 모습이다. 이한구(李漢久) 신행정수도이전문제특별위원장은 13일 “행정 기능이 아닌 수도 자체를 옮기는 차원이라면 당연히 국민의 뜻을 따져야 한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도 지난해 TV 토론에 나와 ‘반드시 국민적 합의를 거치겠다’고 거듭 밝힌 바 있다”고 상기시켰다.

이에 대해 열린우리당 신행정수도건설특별위원장인 박병석(朴炳錫) 의원은 “신행정수도 건설은 2002년 대선에서 승리한 노무현 후보의 공약이다. 더욱이 지난해 12월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관련 특별법이 통과되면서 정치적 법률적으로 국민 동의도 받았다”고 강조했다. 김현미(金賢美) 대변인도 “국회에서 함께 법을 통과시켜 놓고 이제 와서 검증 운운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혼선과 논란, 왜 생겼나=하지만 행정수도 이전의 범위와 관련해 ‘본심이 무엇이냐’를 놓고 여권 스스로 혼선을 자초한 측면도 없지 않다.

노 대통령은 대선을 앞둔 2002년 9월 30일 서울 여의도 민주당사 앞 중앙선거대책위 출범식에서 “수도권 집중 억제와 낙후된 지역경제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 충청권에 행정수도를 건설, 청와대와 중앙 부처부터 옮겨가겠다”고 공약했다. 이는 선대위의 정책 미디어 인터넷 3대 특별본부장과 기획 홍보본부장 등 핵심 인사 5명의 ‘핵심 모임’에서 2차례의 독회(讀會)를 거쳐 나온 여러 공약 중 일부였다.

이 가운데 행정수도 이전은 그 발표 여부를 놓고 논란이 있었으나 임채정(林采正) 정책본부장과 이해찬(李海瓚) 기획본부장이 강력히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수도 이전 의미를 놓고 정치권의 공방이 끊이지 않았다.

노 대통령은 2002년 12월 15일 대선유세에서 “한나라당이 정책 비판이 아닌 ‘천도’ ‘서울 이전’이란 말로 몰아붙이고 있다. 지금이 왕조시대냐”고 비판했다. 당시 일부 인터넷 매체도 “일부 신문이 행정수도 이전의 부정적 측면을 의도적으로 과장하고 있다”며 노 대통령의 행정수도이전론을 옹호했다.

노 대통령은 그러나 올 1월 “구세력의 뿌리를 떠나 새 세력이 국가를 지배하기 위한 터를 잡기 위해 천도가 필요하다. 한 시대와 지배 권력의 변화를 의미하고 이런 큰 변화를 국민이 선택했다”며 단순한 행정수도 이전 이상의 의미가 있음을 시사했다.

한편 대선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후보 선거대책위에서는 수도권 집값 폭락 우려 등을 내세워 이를 정면 비판하자는 일부 의견이 대두됐으나 “충청표의 이탈이 우려된다”는 분석에 따라 정면 대응을 삼간 채 “천도냐, 행정수도만 이전이냐”의 논란을 제기하는 데 그쳤다.

올해 4·15 총선을 앞두고도 민주당 내부에서 수도이전론의 비현실성을 공격하는 기자회견을 준비했다가 뒤늦게 ‘DJ도 과거 수도이전론을 언급한 적이 있다’는 내부 의견에 제동이 걸려 포기했다. 결국 정책 타당성보다는 철저한 정치 논리에 의해 수도 이전 논란이 굴러온 셈이다.

▽공론화 요구 움직임과 전문가 견해=노태우(盧泰愚) 정부 시절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을 지낸 민주당 김종인(金鍾仁) 의원은 “선거에서 이긴 후보라고 해서 그의 공약이 모두 국민적 합의를 거친 것이라는 식의 주장은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수도 이전은 국가 백년대계 차원에서 철저한 검증을 거쳐야 한다는 설명이다.

안충섭(安忠燮) 여의도리서치 대표는 “정책 판단에서 여론조사는 어디까지나 참고 사항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나 충분한 공론화 과정을 거쳐 유권자들에게 판단 근거가 충실히 제시된다면 여론조사나 국민투표는 국민적 합의 도출을 위한 의미 있는 수단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성원기자 swpark@donga.com

이명건기자 gun43@donga.com


▼法的 쟁점은▼

행정수도 이전 문제는 법학계와 법조계에서도 첨예한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행정수도 이전이 ‘신행정수도의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이라는 법적 체계 아래 추진되고 있고 이를 저지하려는 움직임도 헌법소원이라는 법적 대응으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 선거 결과를 국민의 추인으로 볼 수 있나=행정수도 이전을 대통령 선거 공약으로 제시한 노무현 후보가 당선된 만큼 국민이 행정수도 이전을 승인했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 정부와 여당의 견해다.

이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법학자와 법조인이 반박 의견을 제시했다. 인터넷 법률정보회사 ‘오세오 닷컴’의 최용석(崔容碩) 대표는 “대선은 행정수도 이전 이외의 여러가지 사안을 놓고 투표한 것”이라며 “국민의 검증을 거쳤다고 하는 것은 논리의 비약”이라고 말했다.

▽국민투표가 필요한가=국민투표는 국민이 국가의 의사 형성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국민의 권리. 정부와 여당은 “헌법이 수도를 서울로 한다고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지 않으므로 법률을 제정해 행정수도를 이전할 수 있으며, 이를 위해 별도의 국민투표는 거치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허영(許營·헌법학) 명지대 석좌교수는 “수도와 같은 국가의 중요한 상징물을 변경할 때는 반드시 국민의 뜻을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특별조치법 제정 과정에서의 문제점=여론이나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은 데 대해서도 논란이 많다.

익명을 요구한 헌법학자 C교수는 “행정수도 이전 문제는 전문가와 이해 관계자가 진지하게 모여 토론과 협의를 했어야 하는데 대선 공약으로 논의가 시작되는 바람에 왜곡됐다”며 “참여민주주의에 가장 충실해야 할 논의 대상이 권위주의적인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C교수는 “법률적 정당성을 따지자면 이 부분이 핵심”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정부와 여당은 “법 제정 과정에서 야당과 충분히 논의를 했고 여야가 동의한 것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법적 요건 구비 문제=허 교수는 수도 이전에 관한 모법(母法)이 없는 상태에서 일종의 절차법으로 볼 수 있는 ‘특별조치법’만 가지고 수도 이전을 추진하는 것은 무리라고 지적했다.

허 교수는 또 “특조법 제3조에 보면 ‘국민 여론을 광범위하게 수렴하고 국민 통합에 기여할 의무가 있다’는 내용이 있는데 법의 이런 부분이 지켜지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기본권 침해 여부=이 문제는 ‘특별조치법은 위헌’이라고 주장하는 헌법소원과 관련돼 있다. 헌법재판소법은 ‘기본권을 침해당한 자’만이 헌법소원을 낼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허 교수는 “수도 시민으로서의 혜택은 반사적 이익에 불과한 것으로 재산권 보호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기본권 침해를 주장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C교수와 대한변호사협회 김갑배(金甲培) 법제이사도 같은 견해.

하지만 행정수도가 이전될 경우 많은 사람들의 재산권, 행복추구권, 주거이전 및 직업선택의 자유 등 기본권이 침해된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건국대 임지봉(林智奉·헌법학) 교수는 “서울시민들에게 자기방어의 기회도 주지 않은 만큼 적법절차 위배를 이유로 헌법소원을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수형기자 sooh@donga.com

행정수도 이전에 관한 주용 법적 쟁점
이전에 반대하는 논리쟁점 사항이전에 찬성하는 논리
수도의 위치는 국가안위에 관한 사항이며 수도는 국가의 중요한 상징물이다. 이를 변경할 때는 국민의 뜻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 헌법정신이다.현행법상 국민투표가 꼭 필요한지 여부대통령이 국가 중요정책을 국민투표에 부치도록 규정한 헌법 제72조는 반드시 따라야 하는 강제규정이 아니라 임의규정이다.
대선은 행정수도 이전 문제만을 놓고 투표한 것이 아니다. 이는 여러 가지 공약의 하나일 뿐이다.대선을 통해 국민적 합의가 이뤄진 것으로 볼 수 있는지 여부대선을 통해 국민적 합의가 된 것으로 봐야 한다
수도이전처럼 중요한 문제를 공청회 한번 거치지 않고 추진하는 것은 참여민주주의에 반하는 일이다국회의 법제정 과정에서 공청회를 거치지 않은 것에 대한 논란입법기관인 국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공청회 안 한 것을 문제 삼을 수는 없다.
특별법은 수도이전에 관한 법이 아닌 ‘건설법’에 불과하기 때문에 이를 근거로 수도 이전을 할 수 없다수도이전에 관한 모법(母法)이 없이 행정수도 건설에 관한 절차법만으로는 법적 요건이 구비되지 않았다는 주장의 타당성 행정수도 건설은 특별법으로도 충분하다
특별법 제정으로 재산권을 직접 침해받거나, 받을 우려가 있다면 헌법소원의 당사자가 될 수 있다서울시민 등이 헌법소원을 낼 수 있는 청구인 자격이 있는지 여부서울시민이나 서울지역 기업체가 누려온 각종 이익은 수도가 서울에 위치한 데 따른 ‘반사이익’일 뿐이며, 이는 재산권 보호의 대상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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