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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참회록]2부 ③지역정치의 굴레/김영환 의원

입력 2003-09-17 18:37업데이트 2009-10-10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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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수기자서영수기자
“충청후보를 뽑아 호남인들이 미는 구도야말로 필승 전략 아닙니까.”

2002년 6·4 지방선거를 4개월 앞둔 2월 중순 어느 날. 민주당 경기도지사 후보 경선에 나선 김영환(金榮煥) 의원은 수원 경기문예회관 근처에서 만난 대의원들에게 이같이 은근히 지역정서를 자극하는 발언을 하며 지지를 호소했다. 충청 출신인 자신이 민주당 후보로 나서면 호남표는 물론 충청표까지 ‘싹쓸이’할 수 있을 테니 밀어달라는 논리였다. 그는 이 노골적인 지역구도의 경선전략을 포장하기 위해 ‘후륜구동(後輪驅動·힘이 약한 충청이 앞에 서고 강한 호남이 뒤에서 민다는 뜻)’이라는 거창한 이름까지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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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의 ‘후륜구동’ 전략은 사실상 1997년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당선을 이끌어 낸 ‘DJP연합(호남+충청)의 아류’에 불과했다. 그는 결국 경선에서 쓴잔을 마셨다.

17일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된 인터뷰에서 김 의원은 지역주의를 주술(呪術)처럼 믿고 의지해 온 자신의 행태에 대해 “생각할수록 얼굴이 뜨겁다”며 여러 차례 한숨을 토했다.

지역주의에 대한 그의 철석같은 ‘믿음’은 10년 동안 선거를 치르면서 거둔 숱한 ‘성공체험’을 통해 뿌리를 내렸다. “지역구에 연고도 기반도 없는 데다 무명의 신인인 내가 ‘낙하산공천’을 받아 무난히 당선되고 어떻게 재선에까지 이를 수 있었겠습니까. 두말할 것 없이 DJ의 집권을 염원했던 호남출신과 내 고향 충청인들의 절대적 지지 덕분이었지요.”

김 의원은 “나는 늘 그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한다고 다짐했다”며 “내가 입으로는 지역구도 정치의 타파를 얘기하면서도 실천은 하지 못한 채 적당히 타협해 온 것도 그 때문이었던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지방선거에 내세울 도의원 후보나 시의원 후보를 선출할 때에도, 지구당의 간부를 임명할 때에도 이 ‘철칙’을 항상 적용했다.

1998년 4월 25일 오후 2시 안산 올림픽기념관.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새정치국민회의 안산시장후보 경선이 벌어지고 있었다. 당원들이 “방향을 제시해 달라”며 김 의원의 입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정치적 중립’을 명분으로 내세워 끝내 입을 굳게 다물었다. 95년 6·27 지방선거에서 국민회의 소속으로 당선됐던 현역시장(경기출신)과 옛 여당 소속이었다가 정권교체 직후 국민회의로 옮겨 온 호남출신 후보가 경합을 벌였기 때문이었다.

김 의원은 속으로 ‘야당시절부터 고락을 같이한 현직 시장을 제치고 옛 여당에서 옮겨온 후보를 선택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 고향 출신 시장을 갖고 싶어 하는 다수 호남 대의원들의 욕구를 거스르는 것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눈에 선했다. 결국 그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끝까지 침묵을 지켰고, 호남출신 후보가 선출된 것으로 경선은 마무리됐다.

김 의원은 민주당의 최근 분당 사태에 대해 “신당 창당은 지역구도 타파를 내세우고 있지만 호남 고립을 통한 영남표 구애 전략으로 도리어 지역주의를 심화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래서 그는 민주당을 떠나지 않을 생각이다. 하지만 이런 잔류 결정조차 ‘호남+충청’이라는 족쇄 때문인 것은 아닌지 그는 끊임없이 자책하고 있다.

지역구도 정치를 타파할 묘방은 정녕 없는 것일까. 그의 고뇌는 당분간 더 계속될 수밖에 없을 듯하다.

박성원기자 swpark@donga.com

▼김영환 의원은…▼

시인이자 치과의사 출신인 재선의원(48세). 연세대 치대 재학중인 77년 긴급조치 위반으로 구속돼 2년간 감옥살이를 했다. 86년 복학한 뒤 ‘시인’ ‘문학의 시대’를 통해 시인으로 문단에 데뷔했고 대학 입학 뒤 15년 만에 졸업, 치과의사가 됐다.

95년 재야입당파로 새정치국민회의에 들어가 15, 16대 총선에서 내리 당선됐고 DJ정부 초기 과학기술부 장관을 지냈다. 6권의 시집과 수필집 2권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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