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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참회록]⑦386의 자화상/허인회 위원장

입력 2003-08-26 18:27업데이트 2009-10-10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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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피’로 (정치권에) 수혈됐던 내가 벌써 ‘헌 피’가 되다니.”

1999년 9월 말 어느 날 국회 의원회관 A의원 사무실. 창당 작업이 한창이던 신당에 참여해 출마하고 싶다는 허인회(許仁會) 민주당 동대문을 지구당 위원장에게 A의원은 “열심히 하라”는 덕담만 건넬 뿐 끝내 “허 동지, 함께 일하자”는 답을 주지 않았다.

당시 여권 지도부는 새정치국민회의 간판 대신 신당 간판을 걸고 2000년 총선을 치르기 위해 ‘386세대’를 주축으로 한 ‘젊은 피’를 대거 영입하고 있었지만, 95년 새정치국민회의 창당시 ‘젊은 피’의 대표주자로 수혈됐던 그는 이미 ‘찬밥’ 신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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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당 공천을 받기 위해 범(汎)동교동계 중에 찾지 않은 중진이 없을 정도였어요. 그러나 모두 안쓰러워하는 표정만 짓는 것을 보고 ‘상황이 매우 어렵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럴수록 더욱 중진들에게 매달릴 수밖에 없더군요. ‘새 정치’를 다짐하며 정치에 입문했던 자존심은 초라하게 구겨졌습니다.”

26일 서울 여의도 민주당사에서 기자와 2시간이 넘게 만나 인터뷰한 허 위원장은 “누구누구가 실세 K씨와 식사를 했다, 누구와 만났다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초조함이 더해가면서 어떡하든 ‘높은 사람’의 마음을 사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고 술회했다. 결국 국민보다는 중진의 눈에 드는 데 급급해지고 ‘중진을 받들어 모시는’ 현실 정치에 물들게 되더라는 게 그의 고백이었다.

그는 결국 ‘신당추진이 지지부진한 이유’에 관한 장문의 보고서를 작성해 한 실세 의원의 사무실로 찾아갔고 이 보고서가 다행히 당시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에게 전달되는 바람에 간신히 11월 초 신당추진위 기획위원으로 신당행 열차에 올라탈 수 있었다.

그러나 신당행 티켓을 얻었다고 공천이 보장된 것은 아니었다. 운동권 시절 가까운 ‘동지’였던 B의원이 중앙당 기자실에서 ‘허인회는 공천 대상이 아니다’는 요지의 간담회를 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2000년 2월 초 어느 날. 허 위원장은 즉시 기자실로 달려가 멱살을 잡아끌다시피 B의원을 복도로 끌고 나와 거칠게 항의했다.

“차후 그런 발언을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고 B의원을 풀어줬습니다. 하지만 당시 입은 마음의 상처 때문에 그와는 이후 서먹한 사이가 돼버렸답니다. 공천 앞에서는 동지도 친구도 없이 막가는 기성 정치인을 빼닮은 듯한 나의 모습이 스스로 한심스럽고 안타까웠습니다.”

허 위원장에게 2000년 4·13 총선 직후 청와대에서 열린 한 행사에서 김 대통령에게 넙죽 절을 했던 이유에 관해 물어보았다.

“공천에서 날 떨어뜨리려 했던 사람들에게 ‘나는 죽지 않는다’는 점을 과시하고 싶은 마음이 앞섰던 것 같아요. 미성숙한 단면의 하나였죠. 또 나를 공천해 준 당 총재에 대한 고마움과 죄스러움이 교차했던 것도 같습니다.”

그는 언론에 얼굴 내고 이름 낼 궁리만 해왔던 자신의 부끄러운 자화상을 솔직하게 털어 놓았다.

“지난해 현충일에 당 지도부와 함께 국립묘지에 참배하러 갔는데 카메라 초점이 맞춰진 지도부 옆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몸싸움을 하며 앞으로 밀치고 간 내 모습을 TV화면에서 봤을 때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허 위원장은 최근 몇몇 386인사들과 함께 정부 고위관계자를 만나 노사관계에 관해 간담회를 가진 일이 있다. 그는 “네덜란드식 모델이 참고는 되겠지만 우리나라 조건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용감하게’ 문제를 제기했지만 “그럼 대안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구체적인 설명을 하지 못한 채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 놓았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민중을 위해서 일하겠다고 정치에 뛰어들었지만 정작 그런 장(場)이 열렸음에도 일을 할 준비가 부족한 데서 무력감을 느꼈어요. 말만 앞세우고 공부가 부족하다 보니 정작 구체적인 준비가 부족했던 것이죠.”

허 위원장은 내년 총선에 출마를 준비 중인 386 동료 후배들에게 자신의 정치 체험을 토대로 뼈아픈 조언을 던졌다. “자신의 공부와 준비 없이 정치에 뛰어들면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채 눈치 보기와 줄서기에 골몰하는 한심한 신세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박성원기자 swpark@donga.com

▼허인회 위원장은…▼

고려대 총학생회장 출신의 386 원외 지구당위원장(39세). 대학 재학시절 삼민투위원장으로 집회 및 시위를 주도하다 구속된 바 있다. 졸업 후 전자제품 유통업체인 ㈜한겨레 전자유통을 차리기도 했고, 중고컴퓨터 수집 재생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1995년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함으로써 정계에 입문했다. 2000년 4·13총선에서 11표 차(재검표 결과 3표 차로 낙선)로 낙선의 고배를 마신 뒤 2001년 10·25 재·보궐선거에서 다시 한나라당 홍준표(洪準杓) 후보에게 3000여표 차로 낙선했다.

99년부터 지역구인 서울 동대문을구에서 ‘신규장각 운동’을 통해 도서보급 운동을 펴며 밑바닥 표를 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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